# 창작시 - 최정/2010-2012년 시

고추꽃 사랑법

최정 / 모모 2010. 11. 29. 13:30

 

 고추꽃 사랑법

                              

                                                                                                   

                          최 정

 

 

 

 난데없이 트렁크에 실려 백두대간을 가로지른 토종 고추가 한 평의 베란다에 겁도 없이 뿌리를 내렸다.

  콜록콜록 골목 소리에 뒤척이며 불면증 걸린 가로등 빛에 잠 설치더니, 매끈하게 편집된 대한민국 뉴스 앵커의 감미로운 목소리처럼 줄기가 올라간다.

  뭉게구름들이 단체로 소풍간 어느 날, 그래도 이 딱딱한 한 평의 베란다에서 사랑만은 버릴 수 없다는 듯 야물게 작은 꽃이 피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 도시를 떠난 꿀벌 대신 사랑의 전도사가 되기로 했다. 붓을 들고 쪼그리고 앉아 꽃가루를 물감 삼아 살살 암술을 간질여 준다.

 

 보란 듯이 탱탱하게 부풀어 올라 눈물 콧물 다 빼는 매운 사랑 한번 해 보라고. 얼얼한 사랑 한번 제대로 해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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