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 근 '반가사유' 반가사유 류 근 다시 연애하게 되면 그땐 술집 여자하고나 눈 맞아야지 함석 간판 아래 쪼그려 앉아 빗물로 동그라미 그리는 여자와 어디로도 함부로 팔려 가지 않는 여자와 애인 생겨도 전화번호 바꾸지 않는 여자와 나이롱 커튼 같은 헝겊으로 원피스 차려입은 여자와 외항선 타고 밀항..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2.02.28
도종환 '발자국' 발자국 도종환 발자국 아, 저 발자국 저렇게 푹푹 파이는 발자국을 남기며 나를 지나간 사람이 있었지 도종환,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창비, 2011) 중에서 * 저자소개 : 도종환 - 1954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으며 충북대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충남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2.02.24
유홍준 '버드나무집 女子' 버드나무집 女子 유홍준 버드나무 같다고 했다 어탕국숫집 그 여자, 아무데나 푹 꽂아놓아도 사는 버드나무 같다고…… 노을강변에 솥을 걸고 어탕국수를 끓이는 여자를, 김이 올라와서 눈이 매워서 고개를 반쯤 뒤로 빼고 시래기를 휘젓는 여자를, 그릇그릇 매운탕을 퍼담는 여..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2.02.23
권지숙 '밤길' 밤길 권지숙 반달이 희미하게 비춰주는 산길을 엄마와 가고 있다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엄마는 말하지 않고 나도 묻지 않았다 오일장이 서는 장터 가는 길 내 동무 양순이네 집으로 가는 길 너무도 익숙한 그 길을 엄마는 내 손을 꼭 잡은 채 땀이 배도록 꼭 잡은 채 앞만 보고 ..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2.02.22
권정우 '풍경' 풍경 권정우 대웅전 뒷마당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에게 거미가 고운 수의를 한 벌 해 입혔다 허공에 새로 새긴 봉분 앞을 지날 때마다 바람이 경을 읽는다 권정우의《허공에 지은 집》(애지, 2010) 중에서 * 저자 소개 - 권정우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2.01.12
장유 '시골로 돌아와', '농부의 일' 시골로 돌아와 1 장유 남쪽 산모퉁이에 밭을 일구고 북쪽 산굽이엔 오두막을 지었네. 아침엔 밭에 나가 일을 하고 저녁엔 돌아와서 책을 읽네. 주변에선 나의 고생 비웃겠지만 내게는 더없는 즐거움이라네. 이제야 알겠네, 농사일 배우는 게 벼슬하는 것보다 더 낫다는 것을. 농부의 일 장유 사람의 마..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1.08.27
김윤이 '오렌지는 파랗다' 오렌지는 파랗다 김윤이 파란, 오렌지 둥근 탁자 위에 누가 저며놓았나 즙액이 흐르네 식탁을 마주하고 있는 동안 화병의 물은 한정없이 썩어가고 장미꽃잎 한 점 눈꺼풀처럼 스르르 떨어지네 어항 속의 금붕어는 빨간 아가미로 떠다니고 탁자위의 파란, 오렌지 누가 저며놓았나 빨간 살점 헤적이며 ..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1.04.28
김태형 '당신 생각' 당신 생각 김태형 필경에는 하고 넘어가야 하는 얘기가 있다 무거운 안개구름이 밀려들어 귀밑머리에 젖어도 한번은 꼭 해야만 되는 얘기가 있다 잠든 나귀 곁에 앉아서 나귀의 귀를 닮은 나뭇잎으로 밤바람을 깨워서라도 그래서라도 꼭은 하고 싶은 그런 얘기가 있다 김태형, 《코끼리 주파수》(창비..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1.04.23
천양희 '그자는 시인이다' 그자는 시인이다 천양희 그는 일생을 쓰면서 탕진했다 탕진도 힘이었다 그 힘으로 피의 문장을 썼다 불꽃 삼키고도 매운 연기 내는 굴뚝의 문장 시뻘건 꽃 피우다 모가지께 툭, 떨어지는 동백의 문장 모천회귀하려다가 불귀의 객이 되는 연어의 문장 문장을 들고 두려움과 슬픔을 이기기 위해 쓰고 쓰..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1.04.22
황규관 '우회하는 길' 우회하는 길 황규관 이 길이 우회하는 길이다. 부딪혀 흘려야 할 피를 피한다고 욕하지 마라 강물을 따라가는 길 산모퉁이를 돌아가는 길이다 풍경을 훔치려는 허튼 욕망을 끝내 버리지 못한다 해도 가마득한 벼랑을 옆구리에 끼고도는 길이다 힘차게 휘어지는 물살이 어지러워 말을 빼앗기는 길이다 ..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1.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