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연가 - 지기(知己) 산골 연가 - 지기(知己) 최 정 이십오 년 지기(知己)가 찾아와 어제 만나고 오늘 만난 것처럼 수다를 떤다 여기저기 긁긴 생채기에 딱지가 앉아 새살 오르는 것도 모르고 우린 중년이 되었다 무섭도록 싱그럽던 우리들의 청춘에도 소용돌이 같은 먹먹한 사랑이 지나가고 이젠 애 엄마가 된.. # 창작시 - 최정/2013-14년 산골연가(청송) 2014.07.18
산골 연가 - 어미 새 산골 연가 - 어미 새 최 정 하우스 작업장 귀퉁이 갈색 가슴털 어미 새가 둥지를 틀었습니다 갓 부화한 아기 새들이 꼬물꼬물 꼼지락거립니다 감자 수확에 정신없다 와 보니 무려 여섯 마리의 아기 새들이 주둥이를 쫙 벌려 먹이를 재촉합니다 나는 감자 상자 포장하느라 바쁘고 어미 새.. # 창작시 - 최정/2013-14년 산골연가(청송) 2014.07.02
산골 연가 - 단비 산골 연가 - 단비 최 정 모처럼 단비가 내려 일손을 놓았습니다 설거지도 쌓아두고 마음껏 게으름 피웁니다 빗줄기가 가늘어진 틈을 타 마당에 나가 푸른 잎들의 합창 소리를 듣습니다 귀가 싱그러워지다가도 낮게 깔린 구름처럼 무거운 눈꺼풀이 내려와 슬그머니 낮잠 자러 들어옵니다 .. # 창작시 - 최정/2013-14년 산골연가(청송) 2014.07.01
산골 연가 - 등불 하나씩 산골 연가 - 등불 하나씩 최 정 마흔이 넘으면 왜소해진 등허리에 외로운 등불 하나씩 켜고 사나 보다 뜬금없이 먼 도시에서 걸려온 대학 선배의 전화 이십 년 넘은 추억 어제 일처럼 이야기한다 그의 등에 켜진 등불이 반짝하고 빛났다가 재빨리 스러진다 모른 척 하기로 한다 어제는 봄.. # 창작시 - 최정/2013-14년 산골연가(청송) 2014.03.14
산골 연가 - 노송(老松) 산골 연가 - 노송(老松) 최 정 폭설이 할퀴고 간 숲속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어지럽습니다 잔설에 찍힌 노루 발자국 따라가다 아름드리 노송 아래 멈춰 섭니다 한쪽이 부러져 나간 노송의 노란 속살 아래 노루 발자국처럼 서성이다 용기 내어 노송을 안아 봅니다 거친 껍질이 볼에 와 닿습.. # 창작시 - 최정/2013-14년 산골연가(청송) 2014.03.14
산골 연가 - 폭설 후 산골 연가 - 폭설 후 최 정 마당에 앉아 잠깐 졸고 싶을 만큼 한낮의 햇살 푸짐해지니 눈 녹은 물이 계곡을 타고 흐릅니다 경쾌한 물소리 가득합니다 일없이 계곡에 내려가 귀가 얼얼하도록 들어 봅니다 산의 옆구리 간질이며 계곡물 흘러 흘러 어디로 갈까요 당신의 발치에 닿아 한 폭의 .. # 창작시 - 최정/2013-14년 산골연가(청송) 2014.02.28
산골 연가 - 폭설 산골 연가 - 폭설 최 정 마을로 이어지는 길이 사라졌습니다 눈썹까지 차오를 만큼 눈이 쏟아집니다 겨우 문 앞에 길을 내다 맙니다 무게를 못 이긴 나뭇가지가 부러집니다 오도 가도 못하고 산속에 유배되었습니다 다만, 설경에 눈멀고 말았습니다 # 창작시 - 최정/2013-14년 산골연가(청송) 2014.02.28
산골 연가 - 늦은 아침 산골 연가 - 늦은 아침 최 정 겨울 아침 산골의 해는 게으르다 서리 낀 창 여니 저 멀리 마을 지붕 옹기종기 햇살이 모여 놀고 있다 느릿느릿 산을 넘어 첫 햇살 도착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읽다 잠든 책을 펴든다 마저 읽다 햇살이 얼굴 들이밀면 그때서야 기지개 켜고 늦은 아침 느.. # 창작시 - 최정/2013-14년 산골연가(청송) 2014.02.28
산골 연가 - 새들의 안부 산골 연가 - 새들의 안부 최 정 몇 번 눈이 내리고 땅이 꽝꽝 얼어붙어 재잘거리던 새들이 보이질 않습니다 초가집이라도 한 채 짓고 따뜻하게 모여 살고 있을까요 아니면 순식간에 쪽방촌으로 내몰려 시린 부리 부비며 떨고 있을까요 이 엄동설한, 침묵만 남은 숲을 바라보며 새들의 안.. # 창작시 - 최정/2013-14년 산골연가(청송) 2014.01.07
산골 연가 - 가계부 정리 산골 연가 - 가계부 정리 최 정 생산비와 생활비 구분해 첫 농사 결산한다 밭 한 뙈기 보잘 것 없는 수입에 오지 않는 미래를 근심하는 마음은 가난하다 아직 자발적 노예일 뿐이다 # 창작시 - 최정/2013-14년 산골연가(청송) 2014.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