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연가 - 갑오년 겨울 산골연가 - 갑오년 겨울 최 정 꽁꽁 언 골짜기 단숨에 삼킬 듯 매서운 바람 몰려와 꼼짝없이 집안에 갇혀버렸습니다 숲속 마른 나무들이 일제히 휘어지며 요란하게 흔들립니다 이불을 얼굴까지 끌어 당깁니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깨었다 다시 무섭도록 깊은 잠이 쏟아집니다 육십갑자 두.. # 창작시 - 최정/2013-14년 산골연가(청송) 2014.12.23
산골 연가 - 홍시 산골 연가 - 홍시 최 정 잎 다 떨군 마른 몸뚱어리에 꽃 피운 건 당신뿐이군요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야윈 가지 끝마다 작고 야무진 수백 개의 꽃을 달았군요 겨우 한 해 농사를 마치고 빈 밭에 서니 당신만 환하게 빛납니다 저무는 순간이 다 쓸쓸한 건 아니라고 당신이 남긴 마지막 살점 .. # 창작시 - 최정/2013-14년 산골연가(청송) 2014.11.21
산골 연가 - 수수께끼 산골 연가 - 수수께끼 최 정 가을걷이 막바지 힘에 부쳐 저녁 차리기도 귀찮아 마른 김 구워 간단하게 먹기로 한다 강철 체력이었나 일곱 자식 건사하며 밭일 마치고 아궁이에 불 때서 밥 짓고 깻잎, 콩자반에 두부, 조청은 다 어찌 만들어 주셨나 마른 김 같은 노모의 검버섯 우적우적 씹.. # 창작시 - 최정/2013-14년 산골연가(청송) 2014.11.13
산골 연가 - 낙엽비 산골 연가 - 낙엽비 최 정 비처럼 낙엽이 내립니다 햇살에 바싹 말라 사각사각 내리는 이 소리 차곡차곡 담아 일분일초 다투며 살고 있을 당신에게 고스란히 보내주고 싶습니다 그곳에서도 사각사각 소리가 날 테지요 잠시나마 창밖을 볼 테지요 비처럼 낙엽이 내립니다 # 창작시 - 최정/2013-14년 산골연가(청송) 2014.11.13
산골 연가 - 반딧불 산골 연가 - 반딧불 최 정 어느 여름밤 반딧불이 내게 물었습니다 읽어 줄 이 없는데 왜 그리 몸 축내가며 쓰냐고 나는 반딧불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봐줄 이 없는 산중에서 왜 홀로 깜빡깜빡 반짝이냐고 그렇게 서늘한 여름밤이 지나가고 반딧불도 날아가고 나는 여태껏 반쪽짜리 연시 한.. # 창작시 - 최정/2013-14년 산골연가(청송) 2014.10.29
산골 연가 - 양파 모종 산골 연가 - 양파 모종 최 정 1 비좁은 모종판에서 늙어갑니다 가녀린 싹이 노랗게 말라 가며 애처롭습니다 흙냄새 맡게 해 주겠다 약속해 놓고 오늘도 내 몸은 천근만근 내일은 너부터 꼭 심어 줄게 물만 주고 돌아서려니 저녁밥 먹는 것도 미안해집니다 2 양지바른 곳에 심었습니다 첫 .. # 창작시 - 최정/2013-14년 산골연가(청송) 2014.10.28
산골 연가 - 거짓말쟁이 산골 연가 - 거짓말쟁이 최 정 팔순의 노모만 모릅니다 막내딸 마흔 넘어 가니 더는 시집가라 말 못하는데 산골에서 홀로 농사까지 짓는다 하면 편히 눈 못 감으실라 도시에서 직장 생활하는 척 전화합니다 찐 감자 맛있게 먹었다 호박죽 맛있게 먹었다 하시지만 제 손으로 키운 걸 모릅.. # 창작시 - 최정/2013-14년 산골연가(청송) 2014.10.28
산골 연가 - 초승달 산골 연가 - 초승달 최 정 어둑해지는 산자락 한 뼘 위로 초승달이 날렵하게 윙크하더니 골짜기 한가득 별들을 흩뿌려 놓았습니다 고라니 한 마리 목청껏 울어대는 가을밤입니다 # 창작시 - 최정/2013-14년 산골연가(청송) 2014.10.27
산골 연가 - 단풍놀이 산골 연가 - 단풍놀이 최 정 낙엽만 밟히는 호젓한 능선 사랑놀이하는 다람쥐 한 쌍 여기서 도적놈 같은 나무꾼 마주친다면 내가 먼저 나무꾼 옷을 훔칠 것 같아 슬그머니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 창작시 - 최정/2013-14년 산골연가(청송) 2014.10.27
산골 연가 - 늦가을 저녁 산골 연가 - 늦가을 저녁 최 정 새들의 재잘거림 한순간에 사라지고 쓸쓸해지는 저녁이 있다 소란스레 지저귀던 그 많은 새들은 다 어디로 갔나 부리를 닦고 긴 밤 보낼 준비라도 하나 마른 잎 하나 둘 바람에 밀려 서걱서걱 부딪치는 소리 유난히 크게 들린다 열흘이면 올 농사일도 끝날 .. # 창작시 - 최정/2013-14년 산골연가(청송) 2014.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