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읽기/좋은시 읽기

박후기 '채송화'

최정 / 모모 2010. 12. 17. 13:42

채송화

 

 

                             박후기

 

 

 

  1

무너진 집안의 막내인 나는

가난한 어머니가

소파수술비만 구했어도

이 세상에 없는 아이

구석진 울타리 밑에서

흙을 먹으며 놀아도

키가 자라지 않아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2

엄마는 동생을 또 지웠다

여전히 나는 막내다

 

  3

회를 앓는 내 얼굴은

자주 시들었다

태양을 벗어나기 위해

여름내 내가 기어간 길은

한뼘도 안되는 거리

 

  4

내 키는 너무 작아서

바람의 손길도 닿지 않았지만

보름달 같은 엄마 엉덩이가

이마에 닿기도 했다

엄마는 아무 때나

울타리 밑에 쪼그리고 앉아

오줌을 누었다

죽은 동생들이

노란 오줌과 함께

쏟아져나왔다

 

 

 

 

박후기,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창비, 2010(초판 2009))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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