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양 의학(침뜸)/침뜸 이야기

나는 왜 침뜸鍼灸하는가?(내 몸에 침뜸하기)

최정 / 모모 2011. 1. 14. 13:14

 

 - 이 글은 [몸을 살리고 삶을 살리는 놀이 : 내 몸에 침뜸하기]

    교재에서 공감이 가는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

 

 

 나는 왜 침뜸鍼灸하는가?

 침뜸을 하면 어떻게든 내 몸에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침뜸이란 참 신기하고 신비하구나', 싶다가 '아, 침뜸이 신비한 게 아니라 몸이 생명이 대자연이 우주가 신비한 거구나' 깨닫게 되지요. 삶이 바뀌어요.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Sicko≫(2007)를 보면 미국의 의료서비스가 얼마나 끔찍한 지. 1979년 발간되어 2000년 한국에도 소개된 책 ≪어느 의사의 고백-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에서 로버트 S. 멘델존은 지나친 약물처방과 불필요한 수술, 방사선 남발로 돈벌이하는 현대의학을 아예 거짓된 '주술呪術에 빠진 종교'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그 '현대의학의 주술'에서 해방되어 '현대의학이라는 종교'의 이교도(異敎徒)가 될 것을 '선동'하게 이르지요.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 바로 지금 행해지고 있는 '의료 서비스'는 외국의 현실보다 나을까요? 의료보험민영화, 영리형 병원, 이런 무거운 것들을 앞세우지 않는다 하더라도 한번만이라도 한국의 의료현실을 되돌아보기를 바랍니다. 의료제도가 국민, 그 가운데 가난한 이들, 그 가운데 많이 아파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정작으로 도움이 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면 한층 더 슬퍼지지요.

 

 WHO는 1972년부터 1977년까지 5년간에 걸쳐 광활한 중국대륙을 누비며 침술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1977년말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를 내놓았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냈답니다.

 NO cost - 돈이 안 든다.

 NO drug - 약이 필요 없다.

 Simple tool - 도구가 간단하다.

 Easy training - 배우기 쉽다.

 Whenever-Wherever -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다.

 Fast effect - 효과가 빠르다.

 Few side effect - 부작용이 거의 없다.

 Scientific propriety - 과학적 타당성이 있다.

 For the people - 만인에게 유용하다.

 

 WHO에서는 1979년에 감기, 소화 장해를 비롯한 48개 병증을 치료할 수 있다고 공인한 데 이어서 300여 개의 폭넓은 질병과 증후군에 탁월한 효용성이 인정된다고 추가 공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중국에서는 뜸은 임상에서 많이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뜸에 대한 언급은 많지는 않지만 침술에 뜸술까지 더한다면 얼마나 막강한 자가 치료법이 되겠어요?

 

 헌데, 대한민국에서 침뜸은 어떤 대접을 받고 있지요? 전통적으로 침뜸이 주요한 민간(민중)의료술로 인정받던 한자문화권(한중일) 가운데 유일하게 남한만이 침뜸이 독자적인 지위를 잃고 한의사(漢方醫)의 하위로 전락했어요. 일침이뜸삼약(一鍼二灸三藥)이라는 오랜 삶의 말은 낡은 옛말로만 남게 됐어요.

 

 세상이 바뀌길 기다리며 지금 당장의 건강과 평화를 미루지는 말아야 하잖아요. 세상이 바뀌기 전이라도 내 삶을 바꿀 수는 있는 거잖아요. 자격증 있는 전문가에게 의존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침뜸을 배워 스스로의 건강을 지키고 이웃의 삶을 어루만지도록 한다면 어떨까 싶은 거예요. 사람들이 약에 의존하지 않고 돈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치료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말은 그럴 듯하지만 그게 쉽지 않아요. 두려우니까. 무섭고 불안하니까. 침뜸을 배워서 침뜸하며 살기 전까지 대개 그런 말씀을 하지요. "아, 이 약 먹이는 게 싫지만 대책이 없잖나?", "아이 열이 펄펄 끓는 거 한번 겪어 봐라, 어느 부모가...?", "병원 가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이러다가 내 몸이 어떻게 되는 거 아니야? 하는 불안감이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러면 그냥 약 드시라는, 주사 맞고 칼 대라는, 의사들에 기대 사는 거예요. 보험 들며 살란 거예요.

 

 사정이 이러한데도 '가난한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이걸 배우고 익혀 집집마다, 마을회관마다, 동네 정자나무 밑마다, 일터 휴게실마다 제 몸에 침을 찌르고 뜸을 뜨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거예요. 우스운 농담에 지나지 않는다구요? 뭘 모르는 순진한 발상이라구요? 뭘 모르는 것도 순진한 것도 맞아요. 현대의 병은 결핍보다는 과잉에서 온다는데, 너무 많이 알아서 탈이 아닌가요? 그래서 순진한 부탁을 하고 싶은 거예요.

 

 "부디, 두려움의 프레임을 깨세요. 주술의 프레임 밖으로 나오세요."

 그래서 '누구나 명의(名醫)가 될 수는 없지만 누구나 침뜸을 할 수는 있다.'

 '먼 명의(名醫, 神醫)보다 가까운 돌파리가 먼저다'는 것이 제 침뜸 공부의 화두입니다.

 

이미 침을 맞거나 뜸떠서 느끼셨고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공부모임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내가 내 몸에 침을 놓고 뜸을 뜨면서 시작되는 어떤 대화, 얘깃거리를 말하는 거예요. 침뜸을 하기 시작하면서 내 몸에 대한 반성, 생면의 관계성에 관한 성찰이 따라붙기 시작할 텐데, 이 때 어떤 물음을 던지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답이 나오겠지요? 바른 대답을 구하려면 바른 질문을 던져야 하잖아요? 어쨌든 되묻기를 시작하는 거예요. 병이 뭐지? 건강이 뭐지? 내 몸이 뭐지? 생명이 뭐지? 자연이 뭐지? 우주가 뭐지? 침뜸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되묻게 되요.

 

 내 몸이 곧 하늘이요 대자연이며 우주니, 침뜸공부에 앞서 생명에 대한 존경심을 되찾기를 소망하는 거예요. 인문학이 사람중심주의를 넘어서기를, '근대'에 갇힌 상상력을 넘어서기를 소망하는 거예요. '근대'의 이름으로 너무도 쉽게 배반하고 짓밟아버린 오래된 오늘, 그리운 삶을 사는 거예요. 그렇게 한다면 환자와 의사(의사, 치료자)로 만나는 게 아니라 그저 다만 생명과 생명, 사람과 사람, 이웃과 이웃, 길동무와 길동무로 만나는 거지요. 삶을 바꾼다는 건 결국 관계를 되찾는 게 아닐까요? 옷짓기나 농사짓기나 집짓기처럼 침뜸은 살림의 기술(:예술)이자 삶의 인문학이에요.

 

 프레임을 깨고 프레임 밖에서 생각해 보세요. 제도 속에서 바라보는 것을 넘어서 보세요. 잘못된 제도, 악순환에 저항하고 개선하기 위한 실천을 하나의 축으로 하되, 스스로 선순환을 구성해 가는 거예요. 침구사 부활이라는 관점을 넘어 스스로 배워서 스스로를 치유할 권리, 아픈 사람의 의지에 따라서 스스로를 치료할 권리(치료의 자기결정권), 먹을거리 입을거리의 자급자족과 함께 의료의 자급자족이라는 상상으로 확장돼야 하지 않을까 해요. 의료서비스의 소비자로 그치지 않고, 스스로 치유와 건강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자신의 몸과 의식을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