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읽기/좋은시 읽기

황규관 '빛나는 뼈'

최정 / 모모 2011. 3. 5. 14:12

빛나는 뼈

 

                             황규관

 

 

살점을 다 발라먹자 조기는 뼈로 누웠다

바다 속을 누비며 살 때는 전혀 예측 못한 순간이지만

가는 지느러미는 아마 보이지 않는 세계가 길렀을 것이다

원하지 않았어도 결국 뜯길 몸,

그래도 입질은 쉴 수 없었으므로

뼈라도 덩그러니 빛나는 것 아니겠는가

바다를 떠나면 죽음은 시작되나

다시 거기서부터 다른 생(生)이 펼쳐지듯

미동도 없이 길게 누웠다

누구나 마지막엔 하얀 뼈가 되지만

제 살로 삼았던 세계가 풍성한 만큼만 빛나는 것인가

진신사리가 무엇인가,

살면서 건네받은 몸을

다른 입에서 건네줄 수밖에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생각하니

까닭모를 울음이 가슴 가득 차올랐다

내 뼈의 색깔이 그후로 내내 궁금해졌다

 

 

 

황규관, 《패배는 나의 힘(창비, 2007) 중에서

  

 

 

'# 시 읽기 > 좋은시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양희 '그자는 시인이다'  (0) 2011.04.22
황규관 '우회하는 길'  (0) 2011.03.05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0) 2011.02.17
나희덕 '뿌리에게'  (0) 2011.02.12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0) 2011.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