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뼈
살점을 다 발라먹자 조기는 뼈로 누웠다
바다 속을 누비며 살 때는 전혀 예측 못한 순간이지만
가는 지느러미는 아마 보이지 않는 세계가 길렀을 것이다
원하지 않았어도 결국 뜯길 몸,
그래도 입질은 쉴 수 없었으므로
뼈라도 덩그러니 빛나는 것 아니겠는가
바다를 떠나면 죽음은 시작되나
다시 거기서부터 다른 생(生)이 펼쳐지듯
미동도 없이 길게 누웠다
누구나 마지막엔 하얀 뼈가 되지만
제 살로 삼았던 세계가 풍성한 만큼만 빛나는 것인가
진신사리가 무엇인가,
살면서 건네받은 몸을
다른 입에서 건네줄 수밖에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생각하니
까닭모를 울음이 가슴 가득 차올랐다
내 뼈의 색깔이 그후로 내내 궁금해졌다
황규관, 《패배는 나의 힘》(창비, 2007)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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