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말이면 이곳 산골 고랭지 농사는 막을 내린다고 하는데
무려 1만 평의 농사를 벌여 놓은 '오체 아빠'의 농장은 수확할 것들이 잔뜩 쌓여 있다.
수확을 다 할 수는 있을까 슬슬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다.
날마다 브로컬리와 시금치 수확이 이어지고
틈틈이 무도 조금씩 수확을 하면서 무청도 모아 말리고 있고
첫서리에도 살아 남은 하우스의 고추들도 절임용으로 수확을 했다.
쌈배추도 조금씩, 양배추도 추가로 수확을 했고...
남은 것은 무! 이게 문제였다.
브로컬리 수확 - 똘똘이 스머프 아저씨가 멀리서 와 도와 주었다. 양배추 추가 수확 - 깊어 가는 산빛
무 수확, 무청을 모으는 '밍밍맘' 무청 박스는 가벼우니 사뿐하게 나르는 '모모'
결단의 날이 왔다.
10월 17일 월요일. 이날은 어떻게든 무 수확을 마쳐야 하는 날이었다.
다음 날은 영하 5도가 예상되어 있다. 이 정도면 무는 다 얼어 죽게 되어 있다.
감사하게도 지원군이 많이 모였다.
'황소' 거사님이 농촌 체험을 지원한 후배 셋을 이끌고 왔고
4번 타자 후배 말고도 동문 2명, 농장 식구 5명, 아랫집 아저씨 동생분 등등
감자밭에 심은 무 수확 - 여럿이 모이니까 좀 속도가 붙는다.
고추밭에 심은 무의 양이 엄청나다. 고추밭 무는 결국 반도 못 뽑았다.
이날은 해가 뜨자마자 정신없이 움직였다.
양상추 수확을 마무리해서 탑차가 와서 실어 갔고 시금치도 조금 수확을 했고
점심을 먹고는 본격적으로 무 수확이 시작되었다.
농촌 체험을 하고 싶어서 온 20대의 젊은 아가씨 두 명은 즐겁게 일했다.
점심으로 먹은 유기농 비빔밥에 감동 했고
춥기는 했지만 무 수확을 재미있어 하며 무척 열심히 도와 주었다.
그러나 오후 4시가 넘으니까 슬슬 표정이 어두워졌다.^^
기온이 뚝 떨어진데다가 처음 해보는 일이니 지칠만도 했다. 그래도 끝까지 잘 도와 주었다.
일만 하다가 다음 날 일정 때문에 저녁도 못 먹고 갔으니 고맙고 미안할 뿐이다.
오후 참을 통닭으로 해결한 뒤, 사실 우리는 저녁을 먹을 틈도 없었다.
해가 졌다! 아, 이 무들은 다 어쩌노? 모두 저장고로 옮겨야 하는, 제일 큰 일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4번 타자 후배와 몹쓸 뼈대를 타고난 동기가 랜턴을 끼고 걱정하며 무 밭에 서 있다.
하나에 40여 킬로가 넘는 무 박스를 옮겨야 한다. 랜턴을 끼고 박스를 나르는 후배와 '최복토' 양
해가 지니까 무서울 정도로 기온이 뚝 떨어졌다.
미리 준비한 랜턴을 착용했다. 야간 작업이 뻔히 예정되어 있던 날이었다.
무를 뽑고도 미처 박스에 담지 못한 무들은 한쪽에 무더기로 쌓아 올렸다.
저장고로 옮길 수가 없으니까 보온 덮개로 덮어둘 생각이었다.
박스에 담아 놓은 것도 문제였다.
부지런히 담을 때까지는 좋았는데 이것을 어떻게 다 저장고로 옮길 것인가.
이 와중에도 '오체 아빠'는 몇 사람들을 데리고 옆 브로컬리밭에서
랜턴을 끼고 브로컬리 수확을 강행했다.
브로컬리 잎을 따 내는 소리가 정말 엄청난 속도로 들려왔다.
아, 발이 시리기 시작했다.
두꺼운 작업복을 챙겨 입기는 했지만 체감 온도는 한겨울이었다.
몸도 완전 지친 시간이었다.
한 박스에 40여 킬로 가까이 되는 무 박스 들기는 남자들도 힘들어 한다.
남자는 이제 2명만 남았고..., 점점 추워지니 시간도 없었다.
4번 타자 후배와 '최복토' 양이 한 조를 이루고
나와 '밍밍맘'이 한 조를 이루어 무 박스 나르는 일을 도왔다.
캄캄한 어둠 속, 오로지 무 박스 나르는 소리만 들렸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모든 일이 끝났다. 정말 아주 긴∼ 하루였다.
얼마나 추위에 떨었는지 이 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추워진다.
들어와서 씻고 삽겹살을 굽고 막걸리를 따고 때늦은 술상이 차려졌다.
그러고 보니 어떨결에 국문과 동문이 다섯 명이나 모여 있었던 것이다.
십 년도 넘게 못 본 얼굴들이었는데
이 농장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이런 깊은 산골에서 만나게 된 것.
그러니 대학 때의 에피소드가 줄줄이 나오면서 술자리가 길어지기 마련이었다.
"내 몸은 이쑤씨개처럼 가늘고 형편 없는데 내 머리는 막걸리통 만하다."
몹쓸 뼈대를 타고난 동기가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만큼 머리로 살아온 삶에 대한 자조이랄까?
머리는 관념으로, 허상으로 점점 커져가는데(너무 오래 정규 교육을 받았다는 거...)
몸은 점점 안 쓰니 이쑤씨개처럼 형편없다? 몸과 머리의 괴리?
타고난 몸이 워낙 허약 체질이니 이 말에 우리는 배꼽을 잡고 웃어야 했다.
웃고 웃었지만 참 씁쓸하기도 했다.
여기 와서 온몸을 써 보니 알겠다.
몸을 참 안 쓰는 삶으로 사회가 구조화되어 있다는 거...
대부분 머리로 이해하고, 자본주의적 체계를 얌전하게 흡수하게 한다는 거...
몸통을 버리고 머리통만 모시고 살아왔다는 거...
몸과 머리가 따로 분리되는 삶..., 관념에 젖은 삶...이었다는 것을.
온몸으로 밭을 일구다 보면 알게 된다.
머릿속의 잡동사니 관념과 허상은 점점 사라지고
껍데기처럼 죽어 있던 온몸의 세포과 근육들이 살아나는 것을.
재미있는 인연으로 이어진 과 동문회 술자리가 새벽까지 길어졌다.
긴 노동과 긴 술자리...
아직 밭에는 최소 5천개가 넘는 무가 방치되어 있지만
오늘 하루 우리를 바쁘게 만든 무! 너의 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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