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준비 시절/예비 농부의 농사 배우기(2011년)

시금치, 아아, 시금치

최정 / 모모 2011. 11. 22. 11:50

 

그래, 올 것이 왔다.

8월 26일 경에 파종한 시금치를 수확하게 된 것이다.

가을 가뭄으로 생각보다 더디게 자라서 물을 주고서 10월 초에야 첫수확을 하게 된 것이다.

 

 

 

시금치 밭에 물 주기

 

 

 

가만히 쪼그리고 앉아서 하는 시금치 수확은 정적이다.

명상을 하는 기분이랄까?

한동안 무거운 무, 양배추 수확을 해온 터라 주로 힘을 쓰는 일이었다.

그런데 시금치 수확은 차분하고 꼼꼼함이 필요한 일이었다.

생각 만큼 속도도 붙지 않는다. 그리고 손이 많이 간다.

처음에 4킬로 한 박스를 채우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

이파리가 연해서 차곡차곡 뿌리 끝을 맞추어 박스에 쌓아 담는 것이 어찌나 조심스러운지...

 

 

 

시금치 무더기를 살짝 쥐고 칼을 흙 속에 넣어 뿌리를 1센티 정도 남기도록 자른다.

 

 

시금치를 들어 올려 흙을 털어 낸다.

 

 

손으로 일일이 잔뿌리를 떼고 누런 떡잎을 떼어 낸다.

 

 

흙과 떡잎을 떼기 전의 시금치 모습

 

 

이렇게 박스에 차곡차곡 부서지지 않게 담아 일정한 무게를 재어 출하했다.

 

 

 

종일 매달려도 발주량에 택도 없이 부족하게 수확을 하고는 했다.

어찌하면 속도를 높여 볼까, 고민을 하다가 나름 점점 분업을 하게 되었다.

수확을 며칠 해도 밭에 있는 시금치 양이 영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금치 수확을 10월초에 시작해서 날이 따뜻했던 관계로 11월초까지 했는데

결국은 100여 평의 시금치 중에서 반이나 수확을 했던가?

통이 큰 농장주 '오체 아빠'가 시금치 파종을 아주 스케일 크게 해버린 탓이다.

그래도 시금치 수확은 힘이 덜드는 일이기는 하다.

쪼그리는 자세 때문에 무릎과 허리 힘이 들어가지만 종일 해도 힘은 남게 된다.

시금치 수확은 여성에게 비교적 잘 맞는 종류이기는 한데

문제는 속도이다. 시금치 수확은 품을 사서 하면 남는 게 없단다.

그래도 나중에는 30-40여 분에 한 박스를 할 정도까지는 빨라진 듯하다.

이상하게 시금치 다듬는 일에 재미가 붙기 시작한다.

가끔 새소리만 들리던 고요한 밭 가운데에 앉아 시금치를 다듬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따가운 가을 햇살, 짙푸른 하늘, 투명한 공기...

여렷이 모여 작업을 하면 수다를 떨기에도 좋은 조건이 된다.

수다 떨기, 이게 또 시금치 수확에 한 몫을 한다.

 

예정에 없던 시금치 출하를 많이 했다.

다들 맛있다고 인기 폭발이었다. 우리가 미처 수확을 못해서 문제였지.

처음 수확을 하던 날, '밍밍맘'이 시금치 겉절이를 했는데 깜짝 놀랐다.

시금치가 그렇게 달콤할 수 있을까?

시금치 무침, 시금치 된장국..., 와서 먹어본 사람들은 다들 깜작 놀라곤 했다.

우리도 깜짝 놀랄 정도로 맛이 좋았으니까.

 

이번에 시금치 농사가 잘 된 것은 사실이다.

발아율도 좋았고 가을이라 김매기 한 번에 대부분의 풀이 잡혔다.

단, 우리가 수확을 하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었다는 거.^^ -_-;;

그래도 많은 분들이 와서 시금치 수확을 도와 주셨다.

여기저기에다 농장 식구들이 시금치 수확할 일손이 부족하다고 엄살을 부렸더니

먼 길을 달려와 하루, 길게는 며칠씩 머물면서 도와주고 간 분들 덕에

반 정도나 수확을 한 것 같다.

 

남은 시금치들은 산골의 눈을 맞고 겨울을 날 것이다.

봄에 그 자리에 시금치가 다시 올라온다고 한다.

와, 기대된다. 이곳에서 겨울을 난 봄 시금치는 어떤 맛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