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시 - 최정/2015-19년 시(대부분 비공개)

갑을 관계

최정 / 모모 2015. 3. 12. 12:10

갑을 관계

 

 



               최 정

 

 

 

 

나에게 갑은 날씨이다.

가물면 웅덩이 물 퍼 나르고

폭우가 쏟아지면 배수로를 낸다.

 

나에게 갑은 풀과 온갖 벌레들이다.

고추에는 진딧물이 극성이고

톡톡이가 배추 이파리에 숭숭 구멍을 낸다.

풀을 뽑다가 지치면 갑이 자라게 둔다.

 

갑들의 횡포에 어리석게 저항하지 않는다.

 

잊을 만하면 고라니가 들어와

양배추와 콩잎을 얌체같이 잘라 먹고 간다.

두더쥐는 잘 익은 단호박만 골라 파먹는다.

 

슈퍼 갑인 땅에게는 자발적 노예가 되기로 한다.

휴일과 특근 수당 정도는 가뿐하게 반납한다.

최저 생계비도, 4대 보험도 미련 없이 반납한다.

 

다만, 죽고 나면 한 줌 흙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





<<리토피아>>, 2015,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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