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발자국' 발자국 도종환 발자국 아, 저 발자국 저렇게 푹푹 파이는 발자국을 남기며 나를 지나간 사람이 있었지 도종환,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창비, 2011) 중에서 * 저자소개 : 도종환 - 1954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으며 충북대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충남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2.02.24
유홍준 '버드나무집 女子' 버드나무집 女子 유홍준 버드나무 같다고 했다 어탕국숫집 그 여자, 아무데나 푹 꽂아놓아도 사는 버드나무 같다고…… 노을강변에 솥을 걸고 어탕국수를 끓이는 여자를, 김이 올라와서 눈이 매워서 고개를 반쯤 뒤로 빼고 시래기를 휘젓는 여자를, 그릇그릇 매운탕을 퍼담는 여..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2.02.23
권지숙 '밤길' 밤길 권지숙 반달이 희미하게 비춰주는 산길을 엄마와 가고 있다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엄마는 말하지 않고 나도 묻지 않았다 오일장이 서는 장터 가는 길 내 동무 양순이네 집으로 가는 길 너무도 익숙한 그 길을 엄마는 내 손을 꼭 잡은 채 땀이 배도록 꼭 잡은 채 앞만 보고 ..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2.02.22
권정우 '풍경' 풍경 권정우 대웅전 뒷마당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에게 거미가 고운 수의를 한 벌 해 입혔다 허공에 새로 새긴 봉분 앞을 지날 때마다 바람이 경을 읽는다 권정우의《허공에 지은 집》(애지, 2010) 중에서 * 저자 소개 - 권정우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2.01.12
장유 '시골로 돌아와', '농부의 일' 시골로 돌아와 1 장유 남쪽 산모퉁이에 밭을 일구고 북쪽 산굽이엔 오두막을 지었네. 아침엔 밭에 나가 일을 하고 저녁엔 돌아와서 책을 읽네. 주변에선 나의 고생 비웃겠지만 내게는 더없는 즐거움이라네. 이제야 알겠네, 농사일 배우는 게 벼슬하는 것보다 더 낫다는 것을. 농부의 일 장유 사람의 마..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1.08.27
김윤이 '오렌지는 파랗다' 오렌지는 파랗다 김윤이 파란, 오렌지 둥근 탁자 위에 누가 저며놓았나 즙액이 흐르네 식탁을 마주하고 있는 동안 화병의 물은 한정없이 썩어가고 장미꽃잎 한 점 눈꺼풀처럼 스르르 떨어지네 어항 속의 금붕어는 빨간 아가미로 떠다니고 탁자위의 파란, 오렌지 누가 저며놓았나 빨간 살점 헤적이며 ..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1.04.28
김태형 '당신 생각' 당신 생각 김태형 필경에는 하고 넘어가야 하는 얘기가 있다 무거운 안개구름이 밀려들어 귀밑머리에 젖어도 한번은 꼭 해야만 되는 얘기가 있다 잠든 나귀 곁에 앉아서 나귀의 귀를 닮은 나뭇잎으로 밤바람을 깨워서라도 그래서라도 꼭은 하고 싶은 그런 얘기가 있다 김태형, 《코끼리 주파수》(창비..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1.04.23
천양희 '그자는 시인이다' 그자는 시인이다 천양희 그는 일생을 쓰면서 탕진했다 탕진도 힘이었다 그 힘으로 피의 문장을 썼다 불꽃 삼키고도 매운 연기 내는 굴뚝의 문장 시뻘건 꽃 피우다 모가지께 툭, 떨어지는 동백의 문장 모천회귀하려다가 불귀의 객이 되는 연어의 문장 문장을 들고 두려움과 슬픔을 이기기 위해 쓰고 쓰..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1.04.22
황규관 '우회하는 길' 우회하는 길 황규관 이 길이 우회하는 길이다. 부딪혀 흘려야 할 피를 피한다고 욕하지 마라 강물을 따라가는 길 산모퉁이를 돌아가는 길이다 풍경을 훔치려는 허튼 욕망을 끝내 버리지 못한다 해도 가마득한 벼랑을 옆구리에 끼고도는 길이다 힘차게 휘어지는 물살이 어지러워 말을 빼앗기는 길이다 ..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1.03.05
황규관 '빛나는 뼈' 빛나는 뼈 황규관 살점을 다 발라먹자 조기는 뼈로 누웠다 바다 속을 누비며 살 때는 전혀 예측 못한 순간이지만 가는 지느러미는 아마 보이지 않는 세계가 길렀을 것이다 원하지 않았어도 결국 뜯길 몸, 그래도 입질은 쉴 수 없었으므로 뼈라도 덩그러니 빛나는 것 아니겠는가 바다를 떠나면 죽음은 ..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1.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