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본실의 청개구리
최 정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 길지도 않은 이 소설을 끝내 완독하는데 실패했다 마지막 장을 읽기도 전에 깊은 잠에 빠져들곤 하는 것이다
제목을 읽는 순간
재생되는 과학실의 형광등 불빛
유리병 속 마취된 개구리 집어 올릴 때
느껴지던 차가운 핀셋의 질감
매끄러운 다리 핀으로 고정시켜 놓고
면도칼로 하얀 배 가르던 떨리던 손끝
얇은 뱃가죽 조심스레 벌려 놓고
할딱이는 심장 들여다보던 수십 개의 눈알들
으악, 비명소리에 정신 들었을 땐
마취에서 깨어난 커다란 개구리 한 마리
갈라진 배 뒤집고 뛰어올라
아수라장이 된 여자중학교 복도 끝 과학실
그 붉은 심장 아직 뛰고 있을까 갈가리 터진 내장들 아직 끌고 다닐까 수없이 반복 재생되어 마취제를 맞은 듯 나도 모르게 깊은 늪 속으로, 늪 속으로 자꾸만 빠져드는 것이다
≪내 피는 불순하다≫(우리글, 2008)에 수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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