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시 - 최정/부평동 시절 시(1999-2009)

표본실의 청개구리

최정 / 모모 2010. 12. 5. 14:22

 

 표본실의 청개구리


 



                                              최 정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 길지도 않은 이 소설을 끝내 완독하는데 실패했다 마지막 장을 읽기도 전에 깊은 잠에 빠져들곤 하는 것이다



 제목을 읽는 순간

 재생되는 과학실의 형광등 불빛

 유리병 속 마취된 개구리 집어 올릴 때

 느껴지던 차가운 핀셋의 질감



 매끄러운 다리 핀으로 고정시켜 놓고

 면도칼로 하얀 배 가르던 떨리던 손끝

 얇은 뱃가죽 조심스레 벌려 놓고

 할딱이는 심장 들여다보던 수십 개의 눈알들


  으악, 비명소리에 정신 들었을 땐

 마취에서 깨어난 커다란 개구리 한 마리

 갈라진 배 뒤집고 뛰어올라

 아수라장이 된 여자중학교 복도 끝 과학실


  그 붉은 심장 아직 뛰고 있을까 갈가리 터진 내장들 아직 끌고 다닐까 수없이 반복 재생되어 마취제를 맞은 듯 나도 모르게 깊은 늪 속으로, 늪 속으로 자꾸만 빠져드는 것이다


 


 


 


 


≪내 피는 불순하다≫(우리글, 2008)에 수록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