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시 - 최정/부평동 시절 시(1999-2009)

금지된 사랑

최정 / 모모 2010. 12. 5. 14:29

 

 금지된 사랑


 


                                                        최 정


 


 


 


 여자중학교 3학년 그 애는 무거운 책가방 억지로 뺏어 들어주곤 했다. 명령하는 대로 노는 애들과 멀리하며 욕도 쓰지 않았고 친구들과 싸우지도 않았고 용돈도 함부로 쓰지 않았다. 그 애가 고백했을 때 나는 너무 놀라 그만 절교 선언을 해 버렸다.


 

 처음 술을 병째 들이켜고 엉망으로 쓴 편지가 한 통 도착했다. 널 좋아하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장난이었구나. 사실 널 너무 사랑했다. 얼룩져 있는 눈물방울. 분홍색 편지지에 수줍게 쓴 어느 남학생의 첫 러브레터를 뜯던 설렘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자살의 예감 때문에 절교 선언을 거두었지만 그 애의 첫사랑 상처 따위에는 관심 없었다. 반 친구들이 수군대는 소리를 들었다. 다행히 곧 졸업이었다. 억지로 웃어주곤 했지만 작고 답답한 읍내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 애는 여상에 다닌다는 소문이 들렸다. 도시에 있는 학교로 진학한 후 하숙집으로 매일 매일 편지가 배달되었다. 그때 알았다면, 사랑이 독약처럼 퍼지는 통증인 줄 알았다면, 뜯지 않는 편지가 늘어갈 때 주소를 숨기고 이사할 수 있었을까.


 


 


 


 


 


  ≪내 피는 불순하다≫(우리글, 2008)에 수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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