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 짧은 글/떠나보기-산이나 들로

지리산 둘레길 3코스 : 인월 - 금계 구간의 봄

최정 / 모모 2010. 12. 11. 01:07

★ 지리산 둘레길 3코스 : 인월 - 금계 구간. 총 18.7km, 6시간 - 7시간 소요

전북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 구인월교 앞 출발 → 중군마을 → 장항마을 → 매동마을 → 상황마을 → 등구재 → 창원마을 → 금계마을 금계정류장

 

지리산 둘레길의 백미는 단연 3코스라 할 만하다. 긴 거리 만큼이나 다채로운 풍경과 여러 마을을 만나게 된다.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길은 이어지고 나그네들의 발길을 세우는 주막도 여러 개 있다.

하루에 3코스를 걸을 수는 있으나, 다시 간다면 중간에 '매동 마을'에서 1박을 하며 천천히 즐기며 걷고 싶다.

 

               

      구인월교에서 출발해 람천 옆으로 시골길을 걷다 보면 '중군 마을'을 만난다. 작고 아담한 마을이다. 마을을 통과하면 논들이 보인다.

 

               

      백련사 이정표를 보며 조금씩 경사가 높아지는 오르막 길을 걷다 보니 계곡을 만난다. 물이 매우 맑았다.

      가장 아름다운 계곡이 '수성대'이다. 시원한 계곡 옆에 아주머니가 먹거리를 팔고 있다.

      먹고 가라고 몇 번 권했으나, 갈 길이 바쁜지라 인사만 하고 계곡을 건넜다.

 

               

       계곡을 건너면 지리산 자락의 아담한 오솔길이 죽 이어진다. 어찌나 고요하고 공기가 맑은지, 이때 걸으면서 먹은 사과맛이 최고였다.

       이웃 마을에 마실을 가듯 이 오솔길이 끝나면 '장항 마을'이 나타난다. 마을을 내려다보는 것 자체가 그림 한 폭이다.

 

 마을을 내려오다가 노루목에서 당산나무를 만났다. 500년은 넘은 소나무인데, 어찌나 바람을 맞았는지 사진의 반대쪽은 나뭇가지도 잎도 적다.

 바람을 막기 위해 조선 시대 사람들이 심은 소나무란다. 이 나무가 잊혀지지 않아 나는 돌아와 <노루목>이라는 시를 한 편 썼다.

 

               

        마을의 바람을 가려주는 대숲을 지나 다시 마을을 이어주는 길을 따라 걷는다. '매동 마을'을 지나면서 다시 오르막길이다.

        어느덧 내 손에는 나무 지팡이가 들려 있다. 눈 앞에 높은 산이 보였다. 설마 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 산의 고갯길을 넘어갔다.

 

               

      오르막길을 오르면서 주막을 몇 군데 지나쳤다. 목적지에 가서 먹자는 야심찬 계획이었으나, 나중에 배가 고파서 무지 후회했다.

      오르막을 올라온 덕인지 구불거리는 길과 논들과 마을이 펼쳐진다. 저절로 흥이 나는 길이다.

      저 멀리 지리산 능선을 보면서, 그 아래 둥지를 튼 하황, 중황, 상황 마을을 가까이에서 굽이치듯 걷는다.

      경사가 얼마나 차이가 나면 마을도 상(황), 중(황), 하(황)로 나누어 이름을 붙였는지 걸어보면 알게 된다.

 

 하얀 싸리꽃들이 흐드러지게 펼쳐져 있다. 다랑이논들이 펼쳐지고 점점이 마을의 지붕들이 보인다.

 이 다랑이 논이 이어진 길은 지리산 둘레길 중에서 최고의 찬사를 받는 길이라고 한다. 잊지 못할 풍경이다.

 

 이 논들에 벼가 가득 푸르렀을 때, 가을이 왔을 때의 풍경을 상상하면 절로 기분이 좋다.

 모내기 준비로 물을 가득 대 놓은 이 자체로도 너무 아름다웠다. 

 

 이 다랑이논들의 경사는 보기보다 매우 심하다. 지리산 능선의 비탈을 일군 것이다. 큰 돌들을 들어내고, 그 돌들로 논둑을 쌓고, 쌓고 하면서

 수천 년은 다져진 논들일 것이다. 지리산 골짜기의 마르지 않는 풍부한 물도 한몫 했을 것이다.

 이렇게 높고 깊은 산 속에서도 사람들이 수천 년 살아었구나! 이러저러한 생각을 많이 했으나 초고를 써 놓고 시를 완성하지는 못했다.

 

                 

         커다란 돌로 쌓은 다랑이논의 논둑 높이를 보라. 사람 키와 비교하면 금방 느낄 수 있다. 대체 어떻게 쌓은 걸까?

         자연은 사람은 다 위대하다. 꽤 길게 이어지는 오르막길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이다.

         논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등구재'로 가는 가파른 길이 곧바로 나타난다.

 

                

        전라북도 남원에서 경상남도 함양으로 넘어가는 경계이기도 한 고갯길인 '등구재'를 숨차게 넘어왔다.

        이 고개는 함양 '창원 마을'에서 남원 '인월'로 장을 보러 다니는 길이었고, 젊은이들이 시집가고 장가가는 길이었다고 한다.

        긴 코스이다 보니 얼마나 왔는지 책을 찾아 보며 남은 시간을 계산도 해보고, 다시 경사진 길을 절뚝거리며 내려 온다.

 

고개를 넘어오니 무인 주막이 나온다. 글씨의 오타 '음요(료)수' 조차도 정겹다. 긴 고개를 넘어온 만큼 반가운 주막이지만, 저기 보이는 '창원 마을'에 밥 파는 집이 있을 거란 기대감에 길을 재촉했다. 밥집 안내판이 하나 있긴 했으나, 안쪽으로 또 걸어들어가야 했기에 이왕이면 금계에 도착해서 제대로 먹자는 생각에 그냥 '창원 마을'을 지나갔다.

 

               

       '창원 마을'을 옆으로 지나 다시 논둑길을 걷는다. 이곳 역시 다랑이논들이 펼쳐져 있지만 아주 색다른 고즈넉한 맛이 느껴진다.

 

 이 아름다운 풍경들을 지나 또 한번의 산길이 나올 줄 몰랐다. 열량이 있는 간식을 먹기는 했으나, 점심을 굶고 걷다보니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절로 나왔다. 다리가 제법 무거워진 시간이다. 배고프다고 투덜투덜...

 

                  

          다시 산길로 접어드는 길에 큰 바위들이 보인다. 새싹이 돋는 나무들이 이쁘기만 하다. 공기가 푸른 색깔일 것만 같다.

          지친 다리를 추스려 마지막 힘을 다해 산길을 넘어갔다.

 

 

                  

           거의 7시간을 걸어 드디어 '금계 마을'에 도착했다. 걸어온 길의 풍경이 머릿 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금계 마을'의 수백 년 된 느티나무에서 드디어 3코스의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밥집은 없었다! 작은 슈퍼를 발견했으나, 주인은 들일을 나갔는지 문이 잠겼다.

           마을에 진입하기 전에 컵라면 파는 휴게소 같은 곳이 있었는데 오직 밥만 먹을 생각에 지나친 걸 후회했으나 이미 늦었다.

           결국,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30여 분 정도 달려 함양 읍내로 나와서 잘 곳을 정하고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