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의 말
박영근
저 바다가 감추고 있는 뜨거운 물길 하나를 나는 기억하고 있다
부두는 비상등 불빛으로 스스로 제 몸을 묶어
집총자세로 며칠째 말이 없고
어린 칠산바다에서 억센 파도를 배우고
황금색으로 단단해지는 비늘의 바다
서산 태안을 지나
바람 잔잔해지는 한저녁쯤에
내 깊은 곳에서 알을 싣던
물고기떼의 길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한번 미쳐버릴 수도 없이
낮술에 취해 끓는 바다엔
새 한마리 날아오르지 않고
장단이나 해주에서 건어온 사투리를 속에서
나는 그 물길이 수천번 뒤집히는 소리를 듣는다
알 실은 무거운 몸을 부려
천 발 삼천 발 투망의 바다를 질러
막 해가 떨어지는 진남포쯤에서 첫배를 풀고
말갛게 야윈 몸들로
어미가 되어 돌아오던
물고기떼 그 몸빛으로 환해지던 물길
오늘도 안개는 시시때때로 물려와 북방한계선을 지우고
남과 북으로 끌려가, 어디에선가 숨어 떨고 있던
눈방울들이 희미하게 불을 밝힌다
박영근, <저 꽃이 불편하다>(창비, 200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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