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읽기/좋은시 읽기

박영근 '연평도의 말'

최정 / 모모 2010. 12. 20. 15:21

 

연평도의 말

 

 

                                         박영근

 

 

 

저 바다가 감추고 있는 뜨거운 물길 하나를 나는 기억하고 있다

 

부두는 비상등 불빛으로 스스로 제 몸을 묶어

집총자세로 며칠째 말이 없고

 

어린 칠산바다에서 억센 파도를 배우고

황금색으로 단단해지는 비늘의 바다

서산 태안을 지나

바람 잔잔해지는 한저녁쯤에

내 깊은 곳에서 알을 싣던

물고기떼의 길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한번 미쳐버릴 수도 없이

낮술에 취해 끓는 바다엔

새 한마리 날아오르지 않고

 

장단이나 해주에서 건어온 사투리를 속에서

나는 그 물길이 수천번 뒤집히는 소리를 듣는다

알 실은 무거운 몸을 부려

천 발 삼천 발 투망의 바다를 질러

 

막 해가 떨어지는 진남포쯤에서 첫배를 풀고

말갛게 야윈 몸들로

어미가 되어 돌아오던

물고기떼 그 몸빛으로 환해지던 물길

 

오늘도 안개는 시시때때로 물려와 북방한계선을 지우고

남과 북으로 끌려가, 어디에선가 숨어 떨고 있던

눈방울들이 희미하게 불을 밝힌다

 

 

 

 

박영근, <저 꽃이 불편하다>(창비, 200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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