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준비 시절/귀농의 고수를 찾아서

귀농의 고수를 찾아서1 - 솔뫼농장

최정 / 모모 2011. 4. 8. 12:32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된 봄, 농촌으로 내려가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어떻게 살고 있을까? 어떤 농작물을 키우며 살까? 여러가지로 궁금한 것들이 많아 길을 나서게 되었다.

  나는 그냥 막연하게 귀농하여 인생의 중후반전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그전에 현장을 직접 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솔뫼농장을 가게 된 것은 침뜸으로 인연이 닿았기 때문이다.  

 49번 국도를 따라 이평리에 이르니 솔뫼농장의 안내판이 보였다.

 충북에 들어서면 낮은 산들이 부드러운 능선으로 이어져 아담한 들과 마을들을 품에 안고 있다.

 참 평화로운 느낌이 든다. 충북은 나에게 고향이기 때문에 모든 풍경들이 참 익숙하고 편하게 다가왔다.

 솔뫼농장의 어울림터에 도착했다. 나무로 지은 이 건물은 여러 사람이 모여 교육 활동을 하기 좋도록 지어져 있었다.

 자고 먹을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었다. 일정한 공간 사용료를 내고 빌려주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미리 연락을 받고 농장의 간사를 맡고 있으신 분이 반갑게 맞아 주셨다.

 곧이어 퉁풀 샘도 왔다. 봄햇살이 좋아서 어울림터의 마당에 있는 나무 의자에 앉아 차 한잔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솔뫼농장 어울림터 모습>

 

 

 

                

                   <어울림터 벽면의 그림>                                                              <솔멩이골 작은 도서관 안내판>

 

 

 

 솔뫼농장은 한살림 공동체에 속해 있어 대부분의 농작물을 한살림을 통해 납품할 수 있어서 인지 안정감이 느껴졌다. 

 지금은 이곳으로 정착하려는 사람들이 번호표를 쥐고 대기하고 있는 형국이라 하니 이유있는 안점감이다.

 여러가지 농작물을 키우고 있었지만 고추와 토마토가 주작목인 것 같았다.

 어울림터 옆에는 솔멩이골 작은 도서관도 있었다.

 여러 가구가 모여 각자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지만 문화생활공동체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농사일이 없는 겨울에는 같이 모여 공부도 하고 있었고 그외 여러 활동도 같이 하고 있었다.

 작은 도서관 옆에는 국선도를 배우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국선도 사부님을 하시던 분이 귀농하신 덕에 국선도 수련을 할 수 있게 되었나 보다.

 저녁 전과 저녁 후의 하루 2타임씩 시간이 배정되어 있었다. 아, 국선도라... 참으로 부러웠다.

 농부들이 모여 국선도를 수련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즐거워지는 일이었다.

 

 간사님의 안내를 받아 마을을 둘러보게 되었다.

 솔뫼농장의 가공공장에 갔을 때 마침 총무님이 있으셔서 엿기름과 고추장 가공 현장을 둘러볼 수 있었다.

 친절한 설명과 안내를 해주셨다.

 

 

 

 

                

                                                               <솔뫼 고추장 가공 공장 장독대들 모습>

 

 

 

                

                  <가공공장 안내판>                                         <한살림햇빛 발전소 '솔뫼' - 지원을 해주신 분 이름들>

 

 

 

 유기농 고추장이 잘 익어가고 있었다. 우리 부모님이 농사지을 때만 해도 고추에 엄청난 양의 농약을 뿌려대며 고추를 키웠다.

 그때는 다들 농약과 화학비료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잘 몰랐다.

 그냥 농촌진흥청 같은 곳에서 권장하는 대로 품목을 정하고 농약, 비료 등을 쓰며 농사를 지었고 거의 매년 농산물 가격은 폭락하기 일쑤였다.

 결국 우리집도 타산이 맞지 않아 사과나무를 몽땅 뽑아내었다.

 우리 동네에는 과수원이 무척 많았었는데 지금은 딱 한 집만 과수원을 하고 있다.

 이젠 벼농사도 타산이 안 맞는지 논이 온통 수박 농사 비닐하우스로 바뀌어 있다.

 

 내가 어린시절 먹었던 것은 집에서 키운 것이었지만 다 농약에 찌든 고추와 사과였던 것이다.

 물론 땅도 같이 농약에 찌들었으니 농촌이 잃은 것은 비단 도시로 나가는 청년들만이 아니라 흙도 잃었던 것이다.

 이번에 나선 길이 역설적이게도 까마득하게 잊고 지낸 고향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 되고 있었다.

 부모님 세대의 농업이 비루하게 천대받고 관이 주도하는 정책에 의해 저가의 농작물 가격으로 착취 받는 형태를 띠었다면, 지금은 분명히 변해 간다.

 이 변화의 과정을 주도해온 수많은 사람들의 땀 냄새를 맡아보는 여정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아직 농촌의 현실은 팍팍하기 그지 없지만 친환경 생태 농업으로 가고 있는 것은 분명 지구와 인간을 살리는 길이 될 것이다.

 

 

 

                

                              <고추>                                                                                        <토마토>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가공공장을 둘러보고 있는데 마침 근처에서 농장 여성회원 한 분이 일을 하고 있었다.

 마침 그분의 비닐하우스를 구경할 수 있었다. 참 똑고르게도 고추와 토마토의 묘목이 잘 자라고 있었다.

 더 우수한 토마토 열매를 생산하기 위해 뿌리가 강한 종과 열매가 강한 종을 각각 길러 줄기를 자르고 접목을 시켜 접붙이는 작업을 해 놓았다고 했다.

 어제 막 작업을 끝내서 찬바람이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천을 걷어 잠깐 보았는데 일일이 손으로 작업한 정성이 느껴졌다.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무엇 하나 거저 얻어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새삼 느껴본다.

 

 

 

                   

                                 <왕소나무 아래서>                                                                 <왕소나무 줄기>

 

 

 

                    

                          <달리는 트럭 짐칸에 앉아서>                                                           <저수지의 모습>

 

 

 

 마을의 볼거리를 보여주고 싶다며 간사님이 우리를 안내한 곳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왕소나무가 있는 곳이었다. 

 트럭에 몸을 싣고 달리며 마을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왕소나무는 멀리서도 그 크기가 짐작이 될 정도로 커다랗게 자라 있었다.

 소나무의 줄기가 용이 꿈틀거리며 올라가는 모습이라고 한다.

 수백 년 마을과 운명을 함께 한 왕소나무의 모습에 감탄을 뒤로 하고 비탈길을 올라가자 저수지가 펼쳐졌다.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을 듯 했다.

 

 

 

 

                 

                   <퉁풀 샘의 비닐하우스 안 토마토>                                                  <퉁풀 샘의 비닐하우스 모습>

 

 

 

 마을을 둘러보고 퉁풀 샘이 일하고 있는 비닐하우스로 갔다. 대강 걸터 앉아 막걸리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퉁풀이라는 닉네임이 퉁명스러운 풀인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퉁소 부는 풀이란다. 어쩐지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었다.

  그래서인지 농사는 예술이라는 말씀 또한 괜시리 더 그럴듯해 보였다. 

 귀농한 지 7-8년 되었는데 처음 삼 년은 그냥 어슬렁어슬렁 놀았다고 한다. 그러고 갑자기 만 평의 농사를 지어 실패한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욕심을 버리고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농사를 지으면 소박하게 살 수 있다고 했다.

 말투나 분위기에서 완전히 농촌에 정착한 평온함이 느껴졌다.

 

 

 

                 

                     <하늘지기 쉼터 - 방과후 공부방>                                                         <해질녘 마을의 모습>

 

  

 일찌감치 내려와 정착한 모습이 부러웠다. 우리가 술을 마신 비닐하우스 아래에는 하늘지기 쉼터라고 이름을 붙인 공부방이 있었다.

 아이들의 교육 또한 공동으로 힘을 모아 할 수 있게 갖추어져 있었다. 솔뫼농장이 정착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 노력들이 대단해 보였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막걸리도 떨어졌다. 

 이쯤에서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저녁도 할겸 한 잔 더 마시기로 했다.

 우리가 이후에 경북으로 갈 예정이어서 방향을 그쪽으로 잡았다.

 트럭을 타고 한 15분쯤 달렸을까? 어느새 경북의 화북면으로 진입해 있었고 퉁풀 샘이 길가에 있던 음식점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순대전골을 시켜 놓고 술잔을 돌렸다.

 우리가 들어간 음식점은 그곳에서 살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내부도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고 음식맛 또한 예상 외로 맛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

 깜깜한 들판에 유독 홀로 불이 켜진 곳이었는데 숨은 맛집을 찾은 느낌이랄까? 

 이야기는 갈수록 무르익고 농사 이야기를 넘어 이제는 침뜸 이야기로 빠져들고 있었다.

 오늘 처음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었다.

 도심에서는 지금도 치열한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각박하게 시간이 돌아가고 있을 텐데 말이다.

 

 우리가 밖으로 나왔을 때는 밤 10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밤하늘에 총총한 별들이 보였다.

 별들을 올려다 보며 우리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바쁜 농사철인데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신 퉁풀 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한결 포근하고 산뜻한 마음이 되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