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준비 시절/귀농의 고수를 찾아서

귀농의 고수를 찾아서3 - 강 언니네

최정 / 모모 2011. 4. 12. 11:20

 

 햇살이 따스하게 쏟아지는 완연한 봄날이다. 

 바쁜 농사철이 시작되었는데 이렇게 여유롭게 답사를 다닐 수 있다니 참 귀중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이명학 씨(전국귀농운동본부 상주귀농지원센터장)의 안내로 경북 화북면을 떠나 주변의 다른 분들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트럭으로 얼마 달리지 않아 바로 충북 괴산군에 진입했다.

  낮 시간이라 사람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모두들 밭에서 일을 하고 있으신가 보다.

 

 

                  

                                  <강 언니네 집>                                                                    <앞마당 텃밭, 장독대>    

 

 

                     

                                <농기구 창고>                                                              <덫에 치여 다리 한쪽을 잃은 고양이>

 

 

 

  손수 집을 지어 살고 있다는 곳에 차를 멈추었다. 지붕이 너와집처럼 나무기와였고 벽은 흙으로 발랐다.

 방문은 한옥과 양옥을 퓨전한 것으로 보이는 이중문이었다. 농사를 지으면서 날마다 이곳에 와서 부부가 집을 지었다고 한다.

 부엌과 이어진 실내의 거실을 무척 크게 만들어 놓았다. 손님들이 올 것을 대비해 일부러 크게 공간을 늘렸다고 한다.

 부엌의 수납 공간을 비롯 거의 모든 것이 손으로 일일이 만든 것이었다. 그 손재주가 참으로 부러웠다. 

 집 앞에 있는 마당에는 작은 텃밭, 장독대가 있고 낮은 돌담이 늘어서 있다. 돌담 위에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산들이 이어져 있고 그 사이로 밭이 경사지게 이어진다. 깊은 산골짜기에 들어온 느낌이다.

 

 도착했을 때는 집주인은 없고 개 두 마리만 맹렬하게 짖어댔다.

 하도 개가 짖어대니까 집 근처에서 일을 하고 있던 ;강 언니;가 누가 왔나 하고 달려오셨다.

  갑작스런 방문인데도 반갑게 맞아주셨다. 남편 분은 다른 집으로 일을 하러 가셨나 보다.

 그냥 발길을 돌리기가 아쉬었는데 집주인을 만날 수 있어 다행이었다.

 

 한쪽 다리가 없는 고양이가 우리를 피하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왔다.

 배를 보니 새끼를 밴 것 같았다. 2주 동안이나 집에 들어오지 않더니 다리가 저 모양이 되어 왔단다.

 덫에 다리를 잘렸으나 죽지 않고 지금처럼 잘 살고 있다. 대단한 고통이었을 텐데 웬만한 사람보다 참을성이 큰 고양이가 대견해 보였다.

 

 

 

                  

                  <밭이랑 만들기, 앞쪽에 강 언니네 집>                                         <잠시 쉬고 있는 '밍밍맘'과 '오체 아빠'>

 

 

 온 김에 일을 도와주고 싶다고 하자, 마침 감자를 심을 때가 되었다고 한다. 집 근처에 있는 밭에 가서 우리는 감자를 심어 보기로 했다.

 밭이랑을 만들고 비닐을 씌우고 감자를 심었다. 내가 흙을 밟고 일을 해본 것이 얼마만일까? 다른 분들이야 계속 해오던 일이라서 익숙해 보였다.

 나도 어릴적부터 본 것은 많아 낯설지는 않았지만 도시에서 벌어 먹고 살다 보니 몹쓸 근육과 몹쓸 노동력을 지닌 몸이 되어 버렸다.

 다행히 잠깐 하는 일이라 힘들지는 않았다. 땀이 살짝 베는 기분 좋은 노곤함이 느껴진다. 

 덜꽃 샘은 역시 장정의 힘과 노동력을 지녔다. 참 씩씩하게 일을 한다. 농사를 짓기 위해 태어난 몸이라고 극찬을 하며 같이 웃었다.

 

 감자를 다 심었을 때, 점심 준비가 다 되었다고 강 언니가 부르신다. 여럿이 같이 해서 금방 끝났는데 점심까지 얻어 먹게 되었다.

 아침도 점심도 소박하고 건강한 시골 밥상을 받으니 참으로 황송하고 즐거웠다. 귀하다는 외꽃버섯도 먹어 보고 직접 말린 곶감도 맛있게 먹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강 언니네 부부가 귀농한 지는 6년쯤 되었다고 한다.

 이젠 이곳 생활에 완전히 정착한 모습이었다. 목소리와 얼굴빛에 이곳의 건강한 땅기운이 느껴졌다.

 멀리까지 차를 타고 나가야 병원이 있어서 병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침뜸을 배운 후에는 그런 두려움이 없어졌다고 한다.

 동네 할머니들에게 침을 놔줄 일이 많이 있다고 한다. 원하는 대로 계속 침을 놔주다가는 농사지을 시간도 없을 정도라고 한다. 

 자급자족의료가 실현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내가 침뜸공부를 시작한 것이 얼마나 잘 한 일인지 새삼 뿌듯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아쉬었다.

 개 짖는 소리를 빼면 적막하기 그지없는 이곳에서 혼자 밭에 앉아 일을 하면 어떤 느낌일까?

 무슨 생각이 들까? 지루해지는 순간은 없을까? 시간은 잘 갈까? 첩첩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이 답답하지는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이런 것들도 물어보고 싶었으나 그럴 기회가 없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중독된 도시를 떠나는 일은 나에게도 큰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귀농을 하려는 남성들의 고민을 보면 아내가 동의를 해주지 않아 주저하게 되는 사례가 많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들의 교육 문제를 무기로 아내들이 반대를 하지만 사실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막상 설득을 해서 귀농을 해도 여성들은 시골 생활에 적응을 못해서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는 일.

 여성에게 농촌은 너무 불편한 게 사실이다. 이 불편함을 넘어서는 희망을 볼 수 있기를 스스로에게 격려해 본다.

 

 

 

                      

                         <용추폭포로 가는 숲길>                                                             <용추폭포 윗부분>

 

 

 

           

                                                                             <용추폭포의 맑은 물>

 

 

                                                                      

                 

                             <용추폭포를 감상하며>                                                            <잠시 생각에 잠긴 '모모'>

 

 

 

 이곳을 떠나기 전에 우리는 이곳의 유명한 용추폭포를 가보기로 했다.

 입구 안내판에 무려 19.1㎞라고 써 있어 이상했으나 실제 숲길을 걸어보니 15분 정도의 거리였다.

 갑자기 여행을 온 기분에 휩싸이며 들뜬다. 용추폭포 앞에 서니 과연 유명할 만한 풍광이었다.

 물이 어찌나 맑은지 덜꽃 샘은 이 물에 몸을 씻으면 아토피가 다 나을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기념 사진도 찍고 맑은 물소리에 귀를 씻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한껏 즐겼다.

 

  우리는 속리산 국립공원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달려 칠성면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칠성면에 덜꽃 샘이 알고 있는 젊은 부부가 귀농을 해서 살고 있다고 했다.

  괴산에 온 김에 잠깐이나마 만나 보고 가기로 한 것이다.  선유동 계곡의 멋진 풍경을 보면서 덜컹덜컹 트럭은 또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