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준비 시절/귀농의 고수를 찾아서

귀농의 고수를 찾아서4 - 젊은 부부

최정 / 모모 2011. 4. 18. 14:19

                    

                                                                                   <생강 나무>

 

 

               

                                                                            < 올 봄 처음 만난 나비>

 

 

 나비가 날고 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을 한껏 느끼며 우리는 괴산군 칠성면에 도착했다. 

 우리를 맞이해 주신 분은 한눈에 보기에도 젊은 분이었다. 이곳은 꽤 넓은 분지였다.

 지금까지 본 다른 마을은 산 아래 군데군데 몇 집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었는데, 이 마을은 넓은 들판에 꽤 여러 집들이 모여서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근처에 규모가 매우 큰 괴산잡곡 공장이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토종 잡곡이 집중적으로 생산되는 지역다웠다.

 

 젊은 부부가 살고 있는 아담한 집으로 들어 갔다. 갑작스러운 방문인데도 매우 반갑게 맞아주었다.

 20대 후반의 여자 분과 30대 중반의 남자 분이 귀농을 한 지 2년째 접어들고 있다고 했다.

 이 마을에 와서 결혼식도 하고 이제 갓 100일을 넘은 예쁜 딸도 낳았다.

 

 마을에 함께 고민을 나눌 젊은 사람이 드물다 보니, 우리의 방문이 더욱 반갑다고 했다. 우리보다 젊은 부부가 더 상기된 모습이었다.

 우리 같은 손님이 방문한 게 처음이라 즐거운 모양이다. 대화도 하고 고민을 나눌 젊은 사람들이 없어 그동안 무척 아쉬었다고 한다. 

 오미자 차가 나오고 직접 농사를 지은 것을 재료로 한 티밥도 꺼내 놓았다.

 가는 곳마다 오미지 차가 나오는 것을 보니 이 지역에서는 오미지 밭이 꽤 있나 보다.

 나는 평소에 그저 믹스 커피에 입맛이 길들여져 있었는데 말이다.

 

 남자 분은 마른 체격에 힘이 적어 보여 농사 짓는 것이 다소 걱정되어 보이기도 했다.

 알고 보니 풀무, 전국귀농운동본부, 인드라망, 연두농장 등의 귀농학교를 통해 오래 전부터 준비를 해 왔다고 한다. 

 소위 귀농의 엘리트 코스(?)를 마친 셈이라고 해서 우리는 다같이 웃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월세로 빌려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월세를 내지 않는다.

 그 사연을 들으니 농촌 마을의 따스한 마음이 느껴진다. 마을 어르신들은 젊은 부부가 귀농을 해오자 알게 모르게 신경을 많이 써 주셨다고 한다.

 아기를 낳을 때는 부부의 생각에 따라 병원에 가지 않고 조산원을 불러 집에서 출산을 했다.

 이 마을에서 갓난쟁이의 울음 소리는 참으로 오랜만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마을 어르신들은 요즘 같은 세상에 집에서 출산을 하는 것을 보고는 병원에 갈 돈도 없나 보다고 판단을 하셨나 보다.

 오죽 돈이 없으면 병원에도 못 가고 젊은 새댁이 옛날처럼 집에서 애기를 낳다니!

 이렇게 생각을 했는지, 집주인이 와서 앞으로는 월세를 내지 말고 그냥 살라고 했다고 한다.

 하, 참으로 이런 인정은 도시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도시에서의 생활은 먹고 자고 숨 쉬는 일조차 돈이 없으면 안 되는 곳이자 않는가. 

 사실 조산원을 불러 출산하는 게 병원에 가는 것보다 돈이 더 많이 드는데 하면서 젊은 부부와 우리는 행복하게 미소를 지었다.

 마을 어르신들의 도움에 여러모로 감사하다고 했다.

 

 이제 갓 100일을 넘은 딸이 마침 낮잠에서 깨어나 귀엽고 예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둘 걸 하는 후회가 남는다. 엄마를 딱 빼닮았다.

 딸의 이름을 地(땅 지)와 連(이을 련(연)) 자를 써서 '땅의 뜻을 이어가라'는 의미를 담아 '지연'으로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자를 읽을 때는 '연' 자가 뒤에 와서 '련'으로 발음되게 되어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발음상 '지련'이 되어서 고민을 했으나, 그냥 '지연'이라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딸의 이름에도 귀농한 뜻을 잘 담아 내었다. 이 부부의 앞으로의 삶이 더 기대되었다.

 

 작년, 귀농한 첫 해에는 땅을 빌려 600평 규모의 농사를 지었는데 주작목이 서리태였다고 한다.

 작년에는 서리태 농사가 잘 안 되어 가격이 엄청 올랐던 기억이 있어 물어 보니 역시 서리태 농사는 망했다고 한다.

 귀농한 첫 해에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셈이다. 그래서 올해는 400평으로 규모를 줄이고 주작목을 대학찰옥수수로 정했다고 한다.

 올해는 아예 비닐마저 안 쓸 거라고 했다.

 친환경 농사를 해도 비닐조차 안 쓰기는 어려운데 자연과 환경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에 존경심이 느껴진다. 

 욕심을 버리면 된다고 했다. 앞으로 살면서 땅, 자동차, 집 같은 것들은 소유하지 않고 살기로 했다고 한다.

 이런 것은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삶의 형태는 아니다.

 젊은 나이에 욕심을 버리고 살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부부의 모습이 참 오래 기억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아직 귀농 초보인 이 부부에게도 15년 가까이 농사를 지어온 '오체 아빠'의 이야기가 무척 궁금한가 보다.

 만 평의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하자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러나 소유하고 있는 것은 트럭 한 대. 

 '오체 아빠'도 무엇인가를 소유하려고 노력했다면 가능했을 것이다.

 혼자 편히 살려고 했다면 굳이 1인 귀농운동본부 같은 역할을 하며 귀농하려는 사람들에게 농사일을 가르쳐 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이곳 저곳에 범상치 않은 귀농의 고수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짧은 1박 2일의 답사 기간 동안 나에게 던져진 질문들이 점점 많아짐을 느낀다. 

 이렇게 삶의 각도를 살짝만 돌려 봐도 비정한 도시의, 안락하다 못해 안락사를 선택해야 하는 삶의 질서를 벗어나

 살 수 있는 길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젊은 부부는 막걸리라도 한 잔하며 많은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어하는 눈치였으나,

 우리는 오늘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기로 했기 때문에 아쉽게도 일어서야 했다.

 작은 마당의 텃밭을 살펴 보고 작별 인사를 했다. 가는 길에 먹으라고 원재료 값도 안 나온 비싼 티밥을 싸 준다.

 작은 먹을 거리 하나에 들어간 시간과 정성을 새삼 떠올려 본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만 내 삶의 고민은 여기에서 다시 시작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 빛나던 청춘의 시절에는 이런 것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욕망의 궤도를 멸시하면서도 그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번민해 왔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