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몰지구
미루나무
최 정
학교 끝나고 신나게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길가에 늘어선 키 큰 미루나무들이 일제히 베어졌다 굵은 밑둥치들만 덩그러니 줄지어 있었다.
미루나무 아래 뙤약볕 식히고 소나기 피하면서 학교가 마냥 좋았던 옆집 동무와 나.
우리가 그런 것도 아닌데 휑한 그 길을 유독 말없이 걸었다. 어른들 말이 사실이구나, 마을이 물에 잠긴다는 게. 아주 커다란 댐이 생긴다는 게.
꼭대기가 안 보일 만큼 키 큰 미루나무가 없는 하굣길은 엄마가 저물도록 집을 비운 것처럼 허전했다.
쓸쓸하다, 는 말을 알기에는 우린 겨우 열 살이었다.
그 휑한 길이 아직 내 마음 어느 귀퉁이에 살아, 쓸쓸한 저녁이면 곧게 뻗은 키 큰 미루나무를 자꾸 불러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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