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읽기/좋은시 읽기

김윤이 '오렌지는 파랗다'

최정 / 모모 2011. 4. 28. 12:11

오렌지는 파랗다

 

 

                        김윤이

 

 

 

파란, 오렌지

둥근 탁자 위에

누가 저며놓았나

즙액이 흐르네

 

식탁을 마주하고 있는 동안

화병의 물은 한정없이 썩어가고

장미꽃잎 한 점

눈꺼풀처럼 스르르 떨어지네

어항 속의 금붕어는

빨간 아가미로 떠다니고

 

탁자위의 파란, 오렌지

누가 저며놓았나

 

빨간 살점 헤적이며

꽃은 피어나고

꽃숭어리 부레처럼 부풀어오르네

 

작은 물고기 잘바닥발바닥

밤새 빨간 두 눈으로 앉아 있는 동안

 

오렌지는 파랗네

슬픔은 여태 익지 않았네

 

 

 

김윤이,《흑발 소녀의 누드 속에는(창비, 2011) 중에서

 

* 저자 소개 : 김윤이 -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과 명지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명지대학원에 재학중이다.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트레이싱 페이퍼」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 책소개(출판사) -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정밀한 묘사와 발랄한 상상력으로 독자적인 시세계를 펼쳐온 김윤이 시인의 첫시집. 등단 4년 만에 펴내는 이 시집에서 시인은 서정시의 전통에 바탕을 두고 관념과 사유의 바다를 유연하게 헤엄친다. 활달한 상상력과 자유분방한 언어, 깊이있는 서정과 현실을 읽는 예리한 시선이 한데 어우러진 수작들이 가득하다.
 시인의 시는 활달한 상상력과 자유로운 언어감각 또한 돋보인다. 결코 밝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전반적으로 생생하고 발랄한 분위기가 유지되는 것은 바로 시인의 이러한 면모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이같은 활달함은 최근의 소위 ‘젊은 시’들과 그 궤를 그대로 같이하지는 않는다. 언어의 가능성을 끝간 데 없이 실험하는 예의 풍조와 달리 시 ‘본연의 서정성’에 한 발을 둔 채 양쪽의 균형을 절묘하게 이루어내는 것이다. 새로운 언어와 상상력으로 연주하는 시의 향연이 읽는 이의 마음을 향기롭게 만들어주는 작품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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