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준비 시절/예비 농부의 농사 배우기(2011년)

묵은밭 비닐 벗기기

최정 / 모모 2011. 5. 31. 10:02

2011년 5월 23일 월요일 오후. 맑음. 초여름 날씨

 

 

낮기온이 초여름 수준이었다.

농장집 주변에 묵은 밭들이 많다.

올해는 묵은밭 비닐을 벗기고 뭔가를 심어 보기로 했다.

농장 식구들이 늘어난 덕에 시도해 보기로 한 것이다.

 

 

 

              

                           비닐이 덮인 밭                                                                          걷어낸 비닐

 

 

 

묵은 밭이라 비닐이 삭아서 그냥 찢어질까봐 걱정했지만 비교적 잘 벗겨졌다.

괭이로 큰 덤불을 걷어내고 비닐을 벗겼다.

유기농을 한 밭인데다가 그냥 묵혔기 때문에 땅이 기름져 보였다.

비닐 속에 각종 벌레들이 많았다. 가끔 이미 둥지를 틀고 떠난 새집도 있었고 뱀도 나왔다.  

보통은 농사를 끝내고 나면 비닐을 벗겨내는데 이 시기에 비닐을 벗기고 있는 곳은 우리 밖에 없을 거다.

 

 

 

 

              

                                                                         밭에 덮인 비닐을 벗기고 있다.

 

 

 

비닐을 다 벗긴 밭을 보니 흐뭇했다. 

이 비닐들은 모아서 트럭에 싣고 비닐을 모아두는 곳에 버려야 한다.

각종 농자재가 밭에 버려지면 그 오염도 심각하다.

각종 농기구는 진화했고 그 재료가 오염원이 되는 현실이다.

비옥한 땅을 만들면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길에 대해 생각해 볼 일이다. 

 

날이 더워서 나는 괭이로 덤불을 벗기다가 자주 시원한 물을 마셨다.

우리가 농장에서 마시는 물은 계곡물이다.

높은 지대여서 산이 도리어 낮은 구릉처럼 보이는데 계곡물이 마르지 않고 흘러내린다.

그냥 이 물을 마시고 수도로 연결해서 쓰고 있다. 물이 매우 차다. 그리고 맛있다.

 

 

 

              

                        괭이를 든 '최복토' 양                                                                 밭 옆의 숲 풍경

 

 

 

일을 하다 주변을 한번 들러보면 5월의 산과 숲의 풍경이 매력적이다.

푸른 하늘과 구름들, 짙푸르게 잎을 부풀리고 있는 나무들, 쉴새없이 들리는 계곡물 소리...

일을 하면 금방 땀이 나고 더워진다.

그늘로 가서 물을 한 잔 마시고 쉬면 바람이 참 시원해서 세상 그 무엇도 부러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들곤했다.

산 속에서 묻혀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하루의 해가 뜨고 지는 것이 일상 그 자체가 되는 생활이다.

 

해가 뜨면 나는 아직 새소리에 잠을 깬다.

새벽 5시쯤이 되면 날이 밝아 오면서 각양각색의 새소리가 시끄러울 정도로 크게 들려온다.

정적을 깨는 이 새소리를 듣고도 다들 잘 자는데 나는 아직 이 소리를 예민하게 듣고 깨곤한다.

그러다가 뒤척뒤척 비몽사몽 하다가 일어난다.

이 생활에 익숙해지면 아침을 여는 새소리를 듣지 못하게 될 때가 올 지도 모르겠다.

 

오전은 쉬고 오후 일만 했더니 몸이 비교적 가볍다.

무념무상. 생각이 많은 게 나의 병인데 무념무상이라...

생각이 지나친 나의 깊은 병이 치유될 날이 올 것인가.

 

 

 

2011년 24일 화요일 오후. 맑음. 더운 날

 

오늘도 낮기온이 초여름 날씨다.

햇볕에 나가면 뜨겁다는 생각이 앞선다. 그늘에 서면 딱 좋은, 상쾌한 느낌이다.

오전에는 빨래를 하고 쉬다가 오후에 일을 시작했다.

집 앞에 있는 작은 밭도 묵은 밭인데 비닐을 벗기고 무엇인가를 심기로 했다.

마루에 앉아서 쳐다보면 묵은 밭이 그냥 방치되어 있어 아쉬웠는데 올해는 우리가 밭을 만들기로 했다.

앞마당과 붙어 있는 밭이니까 매일 보면서 가꿀 수 있을 것이다.

제법 그럴듯한 풍경이 나올 것 같다. 몇 년 휴식을 취한 밭이라 땅이 정말 기름진 느낌이었다.

 

 

 

              

                          앞마당과 붙은 밭                                                                         비닐 벗기기

 

 

 

비닐에 대한 생각.

작은 규모의 농사라면 비닐조차 안 쓰면서 해야 될 일이다.

그러나 이곳은 최소 1만평 이상의 대농이 대부분이다.

일정한 양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그 넓은 밭에 비닐을 안 쓸 수가 없는 형편이다.

비닐은 필요악인가?

농약과 화학 비료 말고도 비닐은 흙을 오염시키는 주범이 될 수 있다.

비닐을 안 써야 대기 중의 습기와 각종 성분들이 흙에 영향을 주어

그야말로 자연의 기운을 듬뿍 받은 먹을거리가 생산되어 우리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줄 터인데 말이다.

 

유기농가의 20-30%는 비닐을 안 쓰고 농사를 짓는다고 들었다.

그러면 풀과의 전쟁을 하면서 엄청난 노동력이 들어간다.

농산물 가격도 더 올라가게 된다.

비닐을 안 쓰고 키운 농작물에 대한 별도의 인증도 필요할 것이다.

 

아, 여기서 나는 딜레마를 느낀다.

상대적으로 비싼 유기농 식품은 일반 서민이 먹기에는 그 가격이 부담된다.

그러면 이것을 판매하고 산다면 누구를 위한 농사인가.

결국 부유층이 대부분 소비하게 되는 것인가.

저소득층은 건강한 먹을거리에서 이미 소외되어 있다는 이야기인데...

내가 꿈꾸는 세상은 아직 멀었다. 너무 멀었다.

느리지만 이 길을 가다보면 지금보다 긍정적인 세상을 만드는데

나의 노력도 보템이 될 날이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가져본다. 

 

헬리콥터로 농약을 살포하며 생산한 저가의 농산물은

자연에 대한, 지구에 대한, 동물에 대한, 미생물에 대한, 인간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 그 자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