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준비 시절/예비 농부의 농사 배우기(2011년)

놀 때는 잘 놀자! 늦여름을 계곡에서

최정 / 모모 2011. 9. 13. 14:00

2011년 8월 26일 금요일. 맑음, 구름 조금

 

 

오전 한 나절 이상 고추를 따고 아랫집 아저씨네 쌈채를 심어 드리고 해질 무렵 손님 두 분이 왔다.

이런 날은 모처럼(?) 저녁부터 술상을 차린다.

 

 

 

100% 현미밥과 각종 야채전 등 완벽한 유기농 밥상!

술은 화학원료가 전혀 첨가되지 않은, 전통 방식의 송명섭 막걸리. 이 막걸리는 멀리서 누군가 보내주셨다.

 

 

 

강원도 옥수수. 올해는 옥수수가 잘 익어서 한 동안 새참으로 옥수수를 실컷 잘 먹었다.

 

 

 

호수 원주민 전통 악기인 '디쥬리드'. 국내에서는 생소한 악기이다.

단전에서 올라오는 숨과 공기의 떨림이 만나 낯설지만 풍덩 빠질만한 소리가 난다.

 

 

 

 

손님 중의 한 분은 해외 여행을 많이 한, 방락벽이 좀 있는 젊은 청년이었다.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특히 티벳의 이야기가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아, 티벳, 티벳, 티벳!

굵지만 맑은 음색 탓인지 이야기에 점점 빠져든다.

동시에 빈 먹걸리 병도 늘어난다.

 

우리는 이날 호주 원주민의 전통 악기라는 '디쥬리드' 연주를 처음 들었다.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하고 잘 연주하는 사람도 드물다고 한다.

이 청년이 거의 처음 국내에 알렸고 연주도 수준급이라고 하니 우리의 귀가 행운인 셈이었다.

호흡만으로도 깊은 울림의 소리가 난다.

바람 소리인가? 쿵쿵거리다가도 맑은 소리가 투명하게 날아간다.

이 산중의 맑은 공기와 만나 연주하는 사람도 명상에 빠져 들었다.

그냥 자연이 주는 명상이다.

이러하니 술자리가 무르익을 수밖에...

 

다음 날의 일거리를 생각해서

손님들이 와도 밤 12시 전에는 잠이 들었는데 이날은 다들 좀처럼 잠들지 못 했다.

그나마 나는 새벽 1시 30분경에 잠이 들었는데

또 누군가는 더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새벽녁에야 잠이 들었다.

귀한 송명섭 막걸리를 단숨에 바닥낸 청년은 미안했던지

다음날 다른 막걸리를 한 박스 사다가 저장고에 넣어 주었다.

또 '오체 아빠'랑 같이 시금치 파종을 마무리해 주었다.

 

 

 

2011년 8월 28일 일요일. 맑고 무더움

 

 

늦여름 더위가 갑자기 기승을 부리는 날이다.

여름 한철 강한 햇볕을 보지 못한 탓인지 더 유난스럽게 더위를 타게 되는 날이다.

이곳이 이 정도로 더우면 도심은 얼마나 불타오를 것인가.

 

오전에 무를 마저 솎아 주고 한 쪽에서는 손님 두 분이 양상추밭 인걸이를 했다.

점심을 먹고 갑자기 '오체 아빠'가 계곡에 놀러 가잔다.

아, 이렇게 더운 날은 그래, 계곡이 최고이다.

 

수박을 사고 막걸리를 챙기고

심지어 '밍밍 엄마'는 뒤늦게 수영용 듀브까지 사들었다.

다짜고짜 튜브를 타러 혼자 성큼성큼 계곡물로 내려갔다.

오늘 안 왔으면 어찌할 뻔 했노?

 

결국 모두들 물로 뛰어 들었다.

더운 날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물이 그리 차지 않았다.

다들 어린애들처럼 신이 났다.

'밍밍 언니'와 '최복토' 양은 수영을 배우느라 열심히 따라 해본다.

맑은 계곡물 소리를 배경으로 '디쥬리드' 소리가 울려 나간다.

소리를 내려면 몸에 힘을 쭉 빼고 불어야 한다.

몸에 힘이 들어가면 푸푸 소리만 난다.

나도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소리를 한 번 내보기는 했다.

 

 

 

물이 좀 줄어 들기는 했지만 맑고 투명한 계곡물

 

 

 

'밍밍 엄마'가는 튜브를 타며 지치지도 않고 신나게 논다.

 

 

 

결국 다들 물에 뛰어 들었다. 수영을 못해 보고 여름이 가나 했는데 무척 즐겁게 놀았다.

 

 

 

'밍밍'이의 수영 실력. 물을 어찌나 겁내는지 죽어라고 헤엄쳐 나온다.

 

 

 

수영 후에 흠뻑 젖어 초라해진 '밍밍', 누가 나를 빠트린 거야?

 

 

 

한 번의 수영으로 지친 '밍밍'이가 몸을 말고 잔다.

 

 

 

나는 수영을 안 하고 족욕을 했다. 아, 시원하다.

 

 

 

나는 그늘에서 돌을 베고 낮잠을 즐기다가 족욕만 했다.

그냥 물에는 들어가기 싫은 날이었다.

 

초등학교 때의 일이다.

수영을 전공한 체육 선생님이었는지 학교 앞의 개울에 줄을 쳐 놓고

수영을 가르쳐 주셨다. 나중에는 따로 선수를 선발하여 맹훈련을 시키시더니

전국체전에서 큰 일을 내셨다. 금메달 몇 개를 따 왔던 것!

산골에서 그것도 수영으로 금메달을 땄으니 도교육청에서 한컷 고무됐는지

학교 앞에 그럴싸한 수영장을 지어주었다.

이 때부터 전교생의 여름은 슬퍼졌다.

전교생 모두 수영복을 구입해야 했고 모든 체육 시간은 수영만 해야 했다.

체육 실기 시험도 수영으로 봤다.

이때가 5, 6학년 때였는데 사춘기에 진입하는 우리들에게

수영복을 갈아 입는 일도, 몸매가 드러나는 수영복을 입는 것도 곤욕스러웠다.

더구나 수영부에 뽑히면 징그러운 호랑이 같은 수영 선생님의 혹독한 훈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금메달을 따 온 이후 수영부는 선수 선발에 있어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새학기가 시작되면 전교생을 운동장에 모아 놓고 손을 앞으로 쭉 내밀게 한 뒤에

키와 손모양을 보고 수영부를 우선 선발해 갔는데

수영부에 뽑힌 아이들은 그야말고 통곡을 하며 우울해하곤 했다.

나는 어릴 때 앞 개울에서 수영을 하며 잘 놀고는 했는데

이때 이후로 수영을 싫어하게 되었다.

수영부에 뽑히는 불운이 찾아온 것!

하, 다행히도 미술부 선생님이 꼭 미술 대회에 내보내야 하는 아이이니

수영부는 안 된다고 해서 겨우겨우 미술부에 남아서 악몽 같은 훈련은 면했다.

그래도 웬만한 수영은 이때 배웠는데

초등 학교 졸업 후 수영을 안 했기 때문에 지금은 내 수영 실력을 알 길이 없다.

 

아무튼 이런 추억이 있어 나는 물에 들어가기 싫었던 것일까?

족욕만으로도 충분히 시원해지는 날이었다.

 

어느 책에서인가 읽었는데

부지런한 농부는 잘 쉰다, 고 했다.

적절하게 쉴 줄 아는 사람은 밭에서 쓰러지지 않고 한결같이 일할 수 있다.

죽어라고 일만 한다고 작물이 죽어라고 커주는 것은 아닐 터.

농사는 하늘의 뜻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잘 놀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