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준비 시절/예비 농부의 농사 배우기(2011년)

전설의 4번 타자가 모여 당근을 뽑다 보니

최정 / 모모 2011. 9. 14. 17:00

 

2011년 9월 2일 금요일. 바람이 심하고 흐리고 찬 날씨

 

 

예상보다 일찍 당근을 수확한다기에 부랴부랴 농장으로 달려 갔다.

산골 마을 앞에 서는 순간 오싹하게 소름이 돋는다.

태풍의 간접 영향권에 들어 바람이 심하고 쌀쌀하게 느껴지는 날씨였다.

 

선명한 주황색의 당근을 꼭 수확해 보고 싶었다.

비가 많은 여름을 지냈으니 썩지 않고 잘 자랐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제초 작업을 할 밭이 많아 미처 당근밭은 마지막 제초 작업을 못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당근 줄기는 보이지 않고 온통 풀밭이었다.

풀밭에서 당근을 캐내고 있는 모습이었다.

역시 당근은 잘 크지 못했다.

손가락만한 크기에서 멈춘 것도 꽤 많았고 썩은 것도 꽤 있었다.

그래도 작년보다 잘 큰 거라고 '밍밍 엄마'는 만족스러워하는 눈치다.

당근은 비닐을 씌우지 않고 씨앗을 뿌려 파종하기 때문에 풀을 제압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고 한다. 제초 작업에 엄청난 노동력이 들어 간다.

그러니 다들 유기농 당근 농사는 꺼려하는 눈치이다.

우리도 몇 번이나 김매기를 해 주었으나 결국은 풀밭에서 수확을 하게 되었다.

출하해야 하는 양에는 한참 못 미치게 수확을 했다.

 

흙이 말라서 당근을 뽑다가 줄기가 끊어지면 곤란했다.

손으로 파서 당근을 캐내야 하니 말이다.

비록 크게 잘 자라지는 않았어도 길게 늘어선 주황색의 줄을 보니 흐뭇했다.

 

서울에서 과 후배가 일주일 동안 일을 도와 주겠다고 내려와 있었다.

거의 10년 만에 보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당근을 뽑으면서 대학 시절 추억에 빠져들었다.

국문과 여자 발야구팀은 교내 체육대회가 열리면 우승컵을 독점해 올 정도로 유명했는데

우리는 한참 그 얘기를 하며 웃었다.

나도 4번 타자였고, 후배도 그 학번을 대표하는 4번 타자였기 때문이다.

그후 한 10년 이상 지나서 전설의 4번 타자들이 만나 산골에서 같이 당근을 뽑고 있는 것이다.

아, 그때는 정말 몰랐겠지.

우리가 다시 이렇게 이런 식으로 만나 환하게 웃고 있을 줄을!

 

 

당근을 뽑아 길게 늘여 놓으면 뒤에서는 당근 줄기를 칼로 잘라 낸다.

당근을 뽑는 후배와 줄기를 칼로 자르는 '밍밍 엄마'

 

주황색의 당근 색깔이 참 예쁘다.

 

포장 가능한 것만 골라 담고 나머지는 따로 담아 가공용으로 나간다.

 

당근밭에 앉은 '밍밍'

 

얘는 또 이러고 아무데서나 잔다.^^

 

 

'최복토' 양이 우리의 발야구 이야기를 재미있어 해서 이야기를 들려 주게 되었다.

대학 2학년 때던가?

문과대 체육 대회에서 어이 없이 불문과에게 역전을 당한 일이 있었다.

워낙 국문과 여자 발야구팀이 최강이라서 국문과 남자들조차 반은 장난으로 불문과를 응원했는데

정말 져버린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여자 발야구는 국문과의 자존심이었거늘!

흥분한 여자 발야구팀이 어느 허름한 주점으로 소집되었다. ㅋㅋ 지금 생각해도 웃음만 나온다.

단무지 한 접시에 깡소주(?) 시켜 놓고서. 안주 먹을 자격도 없다나 뭐라나?

아, 거기서 우리는 그만 엄청난 결심을 하게 되었다.

한 달 뒤에 있을 50개가 넘는 과가 참석하는 교내 체육대회를 대비해 매일 모여 훈련을 하기로 했다.

보통은 한 시간 정도 호흡을 맞춰 보고 타순을 정하고 수비 위치를 정하고 시합에 나가는 그야말로

대학에서 즐기는 발야구 시합이었건만, 우리는 여기에 너무 많은 것을 거는 과 문화가 있었던 것.

 

조교 포스를 풍기는 연장자 과 형을 감독으로 모시고(?) 훈련은 시작되었다.

발야구 시합은 배구공으로 하는데 우리는 축구공으로 연습했다.

그것도 어찌나 딱딱한 축구공인지 한 번 차고 나면 발이 아플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다들 발이 아프다며 공을 잘 못 차더니 나날이 거리가 늘어난다.

이어지는 수비 연습.

딱딱한 축구공이 얼굴에 부딪쳐도 피하지 않고 받아내는 연습을 했다.

좌우 내야의 뛰어난 후배 두 명을 발굴했다.

웬만큼 뜨는 공은 축구공으로도 다 잡아내는 경지에 다다랐다.

외야수로는 이미 전설의 선배 언니 4번 타자가 있었다.

몇 미터를 달려가 공을 받아내는 솜씨는 아무나 따라할 수가 없었다.

어떤 공이든 다 잡아내어 아웃을 시킨다.

학창 시절에 핸드볼 선수 좀 했다더니 과연...

그런데 달리기가 느려서 2루타를 차고도 1루만 나가는 게 취약점이기는 했다.

 

투수는 내 동기가 했는데 역시 축구공으로 빨리 굴려주는 연습, 그리고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서

휘어지게 스트라이크로 타자에게 굴려 주는 연습을 맹렬하게 했다.

발야규 규정상 파울 5번이면 아웃이었고, 스트라이크 3번도 아웃이었다.

역시 이렇게 훈련한 효과는 시합에서 돋보였다.

막강 투수가 되어 있었다.

우리의 연습 때는 항상 선수가 아닌 여러 명의 과 선후배들이 응원해주러 오고는 했다.

그만큼 여자 발야구팀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김밥도 사주고 음료수도 사주고 나름 과내 스폰서가 많았다. ㅋㅋ

 

시합 전 우리는 일사분란한 움직임까지 연습했다.

운동화는 기본이었고 청바지에다가 과MT 때 맞춘 단체복을 입기로 했다.

거기에 응원 구호를 만들었다. 아무튼 프로급 선수들이나 쓸만한 그런 구호였던 것 같다.

드디어 시합이 시작되었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국문과 여자 발야구팀은 비장하게 시합장에 나섰다.

문과대 우승을 놓친 치욕을 씻어야 했다.

시합이 시작되자, 우리는 둥글게 모여 응원 구호를 외친 후 다들 자신의 수비 자리로 단숨에 뛰어간다.

이것도 상대에게 단결력을 과시해 위압감을 주기 위해 미리 약속된 행동이었다.

그리고 몸을 반쯤 구부려 찰테면 차봐라 하는 식으로 상대편 타자를 노려 본다. 

아니나 다를까, 대충 평상복을 입고 즐기러 시합에 나온 다른 과 여자 발야구팀이 깜짝 놀란다.

'재네, 뭐야?' 하는 표정이다.

우리는 완전 '공포의 외인구단' 분위기였다. -_-;;

더구나 투수는 쎄게 보이려고 일부러 붉은 손수건으로 머리끈을 질끈 묶고

시합 내내 껌까지 질겅질겅 씹으며 센 척 폼을 잡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우승이 목표였기 때문에 시종일관 비장했다.

완벽한 내외야 수비! 우리를 통과할 공이 없었다.

더구나 한 달 동안 벽에 대고 공굴리기를 연습한 투수의 빠른 공을 잘 차지 못해 뜬공이 많았다.

쾌속 질주로 결승전까지 콜드 우승을 하며 진출했다.

상대에게 단 한 점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이때 1루 수비를 보았다.

심판을 보는 체육교육과 학생들이 우리팀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너무 멋있다는 것이다. 국문과가 우승했으면 좋겠다며 심판이 편까지 든다.

중간에 살짝 고비는 있었다.

준준결승에서 사회교육과팀을 만났는데 과 응원이 어찌나 요란한지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응원 도구까지 준비해서 우왕좌왕 응원 인원만 많은 우리과 학생들을 주눅들게 했던 것이다.

그래도 막강한 수비가 있어 사회교육과를 누르고 결승에 진출했다.

 

드디어 대망의 결승전이 있는 날!

결승에서 만난 수학과팀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피구 시합을 통해 아주 유명해진 '피구왕 통키'가 있었다.

생긴 것도 남자, 목소리도 남자였는데 정말 팔 힘이 어찌나 센지

불꽃 슛처럼 공을 던졌다. 그냥 던지는 것도 아니고

피구장 모서리에서 모서리로 휘어져서 동시에 2-3명을 아웃시키는 것을 보았다.

'피구왕 통키'가 공을 던지면 우와, 하고 여학생들이 공포의 비명을 지르면서 피하고는 했다.

전 날 우리과 피구팀도 '피구왕 통키'가 주축이 된 수학과에게 패했던 것이다.

아, 결승전답게 긴장감이 흘렀다.

단 한 점도 내주지 않고 결승전까지 올라왔지만 우리는 '피구왕 통키'가 공을 차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너무 쉽게, 아주 가볍게 2루타를 날리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받혀주는 사람이 없어서 우리의 막강 수비를 뚫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피구 시합에서 우승을 눈앞에 둔 수학과팀의 수비 역시 만만치가 않았다.

이해의 우리팀은 사실 좀 공격력이 부족했다.

축구공으로 연습한 탓에 전보다 멀리 차기는 했어도 뜨는 공은 잡히기 일쑤였고

강력한 발을 가진 후배들이 좀 부족했다.

이때 희망을 준 것은 아주 얌전한 후배였다.

막강 내야 수비수였던 후배는 말도 없고 작은 키였는데 공은 잘 차지 못했다.

그래서 후배가 공을 차는 순간, 아, 또 1루에서 잡혔구나 했다.

누가 봐도 아웃 당할 거리였다. 그런데 어디서 그런 능력이?

후배는 1루 베이스를 향해 몸을 던졌다!

뿌옇게 흙먼지가 날렸고 간발의 차로 후배의 손끝이 1루 베이스에 닿아 있었던 것!

심판이 세이프을 외치는 순간, 국문과 모두는 와-- 함성을 지르며 응원석에서 일어섰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후배의 옷이 전부 흙투성이였다. 영화의 한 장면이 연상되었다.

이런 건 연습도 안 했는데 자기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그랬다고 했다.

이 순간을 고비로 갑자기 우리팀의 사기가 올라갔다.

연이은 안타로 점수를 따냈다.

수학과에서 처음 '피구왕 통키' 때문에 1점을 내주기는 했으나 우리팀의 완벽한 승리였다.

우승컵을 과 학생회실에 들여 놓고 모두들 좋다고 흥분해서 난리가 났다.

이 해의 여자 발야구팀 이야기는 두고두고 술자리를 통해 회자되었다.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말이다. ㅎㅎ

 

그해 우승 당시 농촌활동을 온 4번 타자 후배가 입학하기 전이다.

후배가 1학년 때 나는 3학년이었는데

마지막 회, 투아웃 말루에서 내가 대타로 나가서 홈런을 친 사건을 기억하고 얘기했다.

매해 1학년 신입생 중에서 4번 타자를 선발하고는 했는데

전날의 과한(?) 뒷풀이로 영 시합이 시원찮았다.

어쩌랴, 후배 선수는 밤을 세운 뒤풀이로 나무를 붙들고 아침부터 토하고 있는 지경이니...

결승전 때 코치로 나선 전설의 4번 타자 선배 언니가

마지막 단 한 번의 기회를 나에게 주었던 것.

갑자기 타순을 바꾸어 나를 지목해서 내보냈다.

아, 그 푹 눌러쓴 야구 모자 아래 빛나던 선배 언니의 강한 눈빛!

너는 할 수 있어,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눈빛을 보내오는 것이었다.

야구 모자를 눌러 쓴 나도 비장하게 고개를 끄떡끄덕하며 응했던 것이다.

아, 그날은 아침 시합이라서 나도 사실 술이 덜 깬 상태였다.

그래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술김에 멀리 찼다. ㅋㅋ

문과대 발야구는 홈런 규정이 딱히 없이 운영되었는데

그만 내 공이 지나치게 멀리 뻗어나가는 바람에 그냥 홈런이 선언되었다.

5:2로 지고 있다가 마지막회 투아웃 말루 상황에서 역전 홈런으로 시합이 끝났다!

이때 역시 불문과였는데 작년에 당한 국문과 발야구팀의 치욕을 한 방에 날려준 것이다.

우리는 우승컵을 가진 팀이니 만큼 방심하고 과 행사에 매달려 있었는데

이때 불문과는 꼭 우승하겠다고 웬일로 이른 아침부터 연습까지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행가레를 타보고 처음 이날 행가레를 타야 했다.

 

이렇게 발야구에 얽힌, 재미난 추억이 많아 지금 생각해도 웃기다.

사소한 것에도 목숨 걸듯 덤비고 뛰어드는 그런 20대였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