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야
최 정
기울어진 지붕 아래로 쉴 새 없이 빗물이 흘러내립니다. 다 된 형광등처럼 팔순 노모의 기억력이 깜빡깜빡합니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도 같이 깜빡깜빡합니다.
긴 초저녁잠에서 깨어난 노모가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이불을 개고 세수를 하고 옷을 단정하게 갈아 입으십니다. 이미 노모의 기억력은 추석날 아침입니다.
비구름 뒤에 숨어 배부른 저 달도 추석이 지나면 스러질 일만 남았을 테지요. 이내 노모는 깜빡깜빡 다시 졸고, 나도 깜빡깜빡 잠이 들다 날이 밝았습니다. 빗소리가 야속하게 커집니다.
'# 창작시 - 최정 > 2010-2012년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버리고 갈 것만 남아 (0) | 2012.02.09 |
---|---|
막차 (0) | 2012.02.06 |
학생과학대사전 (0) | 2011.03.08 |
하얀 그림자 (0) | 2011.02.10 |
304호의 이별 방식 (0) | 2011.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