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시 - 최정/2010-2012년 시

하얀 그림자

최정 / 모모 2011. 2. 10. 12:45

 

 하얀 그림자

 

 

 

                            최 정


 

 

 쿵, 둔탁한 소리가 나고 창밖이 시끄러웠다. 밖의 상황이 궁금한 아이들을 다잡아 수업을 계속했다. 곧 중간고사였고, 나는 단 1점이라도 점수를 올려야 하는 입시학원 강사였다. 사이렌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문제풀이에 열을 올렸다.

 쉬는 시간에 들으니 둔탁한 소리의 정체는 젊은 여자였다 .삼겹살 구우며 술잔 기울이던 사람들 앞으로 한 여자가 뛰어내렸다. 술잔을 주고받기 좋은 봄날 저녁, 보란 듯이 뛰어내렸다.

 같은 건물에서 한 여자는 뛰어내렸고, 나는 앞만 보고 질주했다. 하루 분량의 달리기를 마치고서야 여자가 뛰어내린 곳을 몰래 내려다본다 .불 꺼진 술집 앞, 그녀의 마지막 그림자가 하얀 선으로 남아 있다. 쿵, 소리도 없이 내 마음이 순식간에 떨어진다.

 

 일생의 몫을 다 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하얀 그림자처럼 돌아누운 밤이 좀처럼 어두워지질 못했다.

 줄줄이 떨어진 봄꽃들의 그림자 밟으며 안간힘 쓰던 내 봄날도 그렇게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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