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준비 시절/귀농의 고수를 찾아서

귀농의 고수를 찾아서7 - 한국판 소로우(?) 아저씨

최정 / 모모 2011. 12. 4. 13:45

 

쇼왜이 아저씨가 홀로 짓고 있는 작은 집 한 채

 

 

 

재일 교포 3세인 쇼왜이 아저씨를 만난 것은 참으로 재미있는 만남이었다.

요즘 좀처럼 보기 힘든 삶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영혼의 행복과 자유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방황하다가

이 마을의 작은 산 아래에 정착할 곳을 찾았다고 한다.

재일 교포분이라 말투가 좀 어눌하기는 했으나 대화를 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고급 단어도 꽤 많이 구사하시는 편이니 유창한 한국어 실력이다.

 

일본에서 30년을 사는 동안은 한번도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불현듯 떠난 브라질이 마음에 들어 식당 오너로 10년을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 중국에서 한 2년 정도 머물며 사업을 하다가

한국에 와서 또 몇 년..., 풀무 학교도 1년 다녀봤고

변산 공동체에서도 살아 봤고 이제 한국 나이 오십.

일본어, 포르투칼어, 중국어, 영어, 한국어 등 5개 국어에 능통하다고 한다.

일본에서 법대를 다녔다는 것으로 보아 엘리트인 것 같은데

그림 솜씨도 뛰어 나고 기타 연주 솜씨도 남다른 것으로 보아

아주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분이시다.

 

이런 분이 어떻게 이런 시골로 들어와

전기와 석유를 쓰지 않는 삶, 소비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신 것일까?

거대 소비 자본, 금융 자본을 멀리하는 삶은 어떤 것일까?

결혼조차 사회적 물질적인 계약 형태로 규정하고 홀로 자연에 기거하는 삶은?

 

 

 

산 아래 다랑이논에 전기를 안 쓰는 작은 집을 짓고 있다.

죽을 때까지 이곳에 살고 싶다고 하신다.

이 주변을 무공해의 자연으로 만드는 꿈을 꾸신다.

 

 

 

아저씨는 건장한 체격인데 나이에 비해 얼굴이 동안이었다.

산에서 맑은 물이 흘러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농사에 거의 활용하지 하지 않는 작은 다랑이논을 두 마지기 구입하여

혼자 평생 살 집을 손수 홀로 짓고 있었는데 우리에게 기꺼이 구경을 시켜 주셨다.

 

전기는 안 쓰고 난방도 최소한의 나무만을 이용하기 위해

로켓 스토브를 활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금은 나무를 때는 사람이 적어 나무가 많지만 앞으로 먼 미래를 생각하면

나무조차도 함부로 많이 쓰면 안 될 것 같다고 하신다.

이곳은 남쪽이라 덜 추우니 다행이지 싶다.

집 짓는 재료도 거의 남이 집 짓다 남는 것들을 얻어다 쓰고

생활 용품도 거의 남이 안 쓰는 것을 가져다 쓰고 있으시다.

옷도 남이 안 입는 것을 얻어다 입고...

동네 어르신들 눈에는 걱정이 태산인가 보다.

저러고 어찌 사나 하고 근신어린 눈으로 지켜보시는 것 같았다.

먹는 것도 주로 두유에 채소...

그래도 타고난 체격 탓인지 힘은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집 짓는 옆에 흐르는 계곡물, 이곳이 아저씨의 샘터

 

 

 

아저씨가 살고 있는 저수지 옆의 오두막집(?)으로 가는 길

 

 

 

아저씨는 어릴 때부터 남에게 베푸는 삶을 살고 싶어 했는데

그럴러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그런데 살다 보니 남과 함께 살아가고 베푸는 삶은 결코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니었다고.

더구나 자본주의에 대한 글을 읽고 무릎을 치며 크게 깨닫게 된 계기가 있었다고 한다.

문명의 이기와 소비를 거부하는 삶 자체가 아저씨의 영혼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몸 하나 누일 정도의 공간인 아저씨의 집. 전기도 없고...

전에는 무당이 살았다는 집인데 아무도 안 살다가 쇼왜이 아저씨가 처음 산다고.

 

 

 

아저씨가 현재 살고 있는 저수지 옆의 작은 집을 가 보았다.

기꺼이 우리들에게 방 내부를 보여 주셨다.

입구는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공간 밖에 없어서

우리는 차례대로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작은 스토브에 자잘한 나뭇가지를 이용해 난방을 하고 음식도 해 먹고 있었다.

그리고 밭에 버려진 배추, 무 같은 채소들이 조금 있었고...

방 내부와 어울리지 않게 클래식 기타가 보였다.

'최복토' 양이 연주를 청하자 즉석에서 멋진 연주를 하신다.

본인이 그린 그림으로 만든 달력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타를 든 젊은 여성의 흑백 사진.

어머니라고 했다. 꽤 미인이신데 일찍 돌아가셨나 보다.

그러고 보니 아저씨는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

작은 집을 한 채 짓고 살아갈 아저씨의 남은 삶이 사뭇 궁금해진다.

 

 

 

 

아저씨의 집 옆에는 근사하게 저수지 풍경이 펼쳐진다.

 

 

 

이 저수지를 바라다보는 것만으로 사색이 저절로 될 것 같다.

 

 

 

아저씨가 사는 방 안의 모습

 

 

 

작은 나뭇가지만으로 난방을 한다. 로켓 스토브(?)를 이용한 겨울나기 

 

 

 

쇼왜이 아저씨는 단순한 자급자족을 넘어선 삶을 추구하고 있었다.

근본주의자라는 단어에 참으로 어울리는 아저씨였다.

돈이 없는 것 같지는 않다.

저렴하지만 다랑이논을 구입했고 전에 일도 했으니...

 

우리가 머무는 곳으로 초대하여 같이 점심 식사를 했는데

듣던 대로 음식 솜씨가 보통이 아니어서 냉장고에 있는 것으로 순식간에 찌개를 만드셨다.

브라질에서 10년 동안 식당을 운영한 것이 빈말이 아닌 것 같다.

아저씨가 먼저 얘기를 해주시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질문을 하는 대로 숨김 없이 다 얘기를 해 주셨다.

꾸밈이나 허세 같은 것은 없었다. 그냥 소박했고 진정성이 있었다.

 

우직하게 나도 내 길을 찾아 가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삶은 아직 자연에서 너무 멀다.

참으로 먼 길이 남아 있어서 그 길을 다 가보지는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