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하게 돌담이 남아있는 마을 모습 만화 <귀촌일기>의 배경이 된 집
생태 뒷간과 헛간의 모습 늦게까지 술을 마신 곳, 온돌 사랑방
이곳에 귀농해서 사는 여러 분들을 한번에 만날 수 있었다.
막걸리를 놓고 간만에 만난 사람들끼리의 수다가 길게 이어졌다.
결혼해서 30대에 귀농한 젊은 세대의 표정들은 한결 여유있는 모습이었다.
친환경 농사, 마음이 느긋해지는 농촌 생활의 여유를 꿈꾸며 귀농한 세대들.
이들에게 고민은 생존의 문제로 보였다.
농사만 지어도 먹고 살 것이 해결된다면 더 바랄 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도시에서 전문직에서 일하다가 근처에 귀농해 사는 분들도 사실은
부업으로 수입을 얻고 농사를 겸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농산물을 파는 문제도 그렇고 팔아도 얼마나 남느냐의 문제도 있는 것이다.
순수하게 농사로만 먹고 사는 분들은 아직은 소수였다.
더군다나 이런 시골 마을은 대개 자자손손 대를 이어온 집성촌이 많다.
자식들은 도시로 다 나가고 어르신들만이 고향 마을을 지키며 살고 있지만
그들에게 젊은 귀농자들은 아직 낯선 외지인에 불과할 것이다.
이곳에도 다양한 직업군이 귀농해 살고 있었다. 교수, 화가, 만화가, 시인, 요가 선생 등등
귀농자들은 주로 근처의 귀농자들끼리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주로 그들끼리 교류하며 살고 있었다.
마을의 원주민과 젊은 귀농자들이 진정한 농촌 공동체를 이루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재인식.
이것이 해결되려면 앞으로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리라.
시행착오를 잘 극복하고 성공한 시골 마을도 많을 것이다.
어르신이 돌아가신 빈집은 있지만 그 빈집을 얻어 사는 일 또한 만만한 일이 아니다.
혹 빈집을 수리해 살다가 무너지는 등의 재해 사고라도 나서 사람이 다치면
도시에 나가 사는 자식 세대인 집주인이 책임을 져야 하니까 그 위험 부담을 아예 없애려고
그냥 무너져가는 빈집 그 자체로 두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땅을 구하는 일도 그렇다.
귀농자들이 몰려드는 지역은 귀농자들이 땅값을 올려 놓게 된다.
큰 자본금 없이 빈집을 얻어 땅을 얻어 농사를 지어 먹고 살려는 젊은 세대가 오려고 해도
땅이고 집이고 한곳에 정착하기 위한 것을 구하기가 그리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러니 고생해 본 귀농 선배들이 하나같이 하는 얘기가 돈을 가지고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땅이 사 두어야 여기저기 쫓겨나지 않고 한곳에 정착할 수 있다고 충고한다.
귀농의 이런 어려운 현실도 문제겠지만
유기농산물의 생산, 유통 과정에 생산자는 점점 소외되고
대자본의 논리로 지배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무엇보다 크다는 게 우리의 주제였다.
소작농이 먹고 살 수 있는 현실은 언제 올 수 있는가?
우리의 술자리 주제가 이렇게 어두워졌다가 소소한 얘기로 웃었다가 밤이 깊어갔다.
까만 밤하늘에 총총한 별이 쏟아지는 밤이었다. 달도 훤하게 밝았다.
젊은 귀농자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곳에는
귀농의 어두운 현실도 있었지만 농촌에 대한 한 줄기 희망도 있었다.
빛은 어둠이 있어야 보이는 법이다.
어쨌든 농촌으로 내려오려는 사람이 근래에 급격하게 많아진 게 사실이다.
도시살이의 비인간성과 냉혹함이 극에 달했는가? 농촌으로, 농촌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것은 좋다.
여기저기서 귀농 지원책도 서둘러 내놓고 각 지역마다 많은 귀농자들을 유치하려고 한다.
그러나 진정한 농촌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소농이 살아 남아야 한다.
대자본, 기업형 농업만이 겨우 생존하는 현실에서는 농촌 공동화 현상이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 10년 후쯤에는 또 농촌이 어떻게 변해있을까 사뭇 궁금해진다.
그 현장에 내가 있게 될 터이다.
무너졌던 돌담과 기와집 10년 동안 두 번이나 물이 넘쳤다는 마을 앞 개울
이곳에 와서 정말 우연하게『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일다, 2011) 만화책 작가와 만나게 되었다.
나는 이 만화책을 2011년 12월에 읽었었다.
직장 동료였던 두 여자가 어느 날 애니메이션 회사를 때려치우고 정말 대책없이 귀농해서 사는 얘기이다.
그 에피소드들이 어찌나 재미있고 웃긴지, 공감이 가서 내심 그 분들이 어찌 사는지 궁금했었다.
나도 올해부터는 여성독립농을 시험해 보는 첫해이니 더욱 관심이 갔었다.
언제 산청에 가면 어떻게 사는지 방문해 보고 싶어졌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어, 혹 그 작가? 하면서 나중에야 눈앞에 있는 분이 만화를 그린 작가인지 알게 된 것이다.
하하, 이렇게도 만나는구나 싶어 한참을 웃어야 했다.
그리고 아주 오래 알던 사이인 것처럼 금방 친밀감이 느껴졌다.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는 <일다>에 연재한 만화를 책으로 묶은 것이다.
그 후속편이 내심 궁금했는데 그만 현장에서 봐 버렸다.
ㅎㅎ, 내 상상과는 너무 멀리 가 있어서 놀랐다.^^
후속편을 기다리는 독자들이 많을 테니 자세한 얘기는 할 수 없고 다만, 아주 잘 살고 계신다.^^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느라 무리를 해서 피곤했지만 황매산에 가서 바람을 쐬기로 했다.
차로 거의 산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어서 능선을 산책해 보기로 했다.
별로 기대를 않고 가서 그런가?
능선의 풍경과 그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경치가 제법이었다.
차로 올라와서 높은 줄 몰랐는데 해발 천 미터가 넘는다고 한다.
목장이었던 곳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능선에 제법 철쭉 군락지가 밀집되어 있었다.
철쭉이 피는 계절에 와야 제격이겠지만 멀리 산들이 첩첩이 이어진 풍경 그 자체도 만족스러웠다.
귀농 답사를 다니다 보면 다양한 마을의 모습과 들의 모습, 그리고 이렇게 잘 생긴 산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제일 큰 즐거움은 사람들과 그들의 삶의 모습을 잠깐이나마 느낄 수 있다는 것.
황매산을 올라가는 길 눈이 시원해진다.
멀리에서 드라마 <옥탑방 왕세자> 촬영 중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
철쭉 군락지, 철쭉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능선의 나무 한 그루, 이런 나무는 나를 멈춰 세운다.
바위가 있는 철쭉 능선 길 천 미터가 넘는 황매산에서 내려다본 풍경
철쭉 군락과 멀리 보이는 산의 곡선들 원래 목장이 있었던 황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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