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07
우물 우물 최 정 어둠이 물감처럼 풀어진 우물이 있었다 아이가 퍼 올리고 퍼 올리는 커다란 두레박에는 어둠이 가득 했다 함께 살던 돼지가 목을 따인 채 우물 옆에서 붉은 피를 콸콸 쏟아냈다 우물에는 늘 이끼가 푸르렀다 아이도 이끼처럼 빨리 자랐다 어둠을 퍼 올리고 퍼 올리면 언젠가 .. # 창작시 - 최정/2010-2012년 시 2010.12.06
감시의 눈 감시의 눈 최 정 초저녁부터 반짝이는 별이 있어 눈 마주치며 설레었는데 혼자 빛나는 저 별이 인공위성이라 한다 침실의 은밀한 속살까지 훔쳐보는 외눈박이 눈빛이었다 한다 원형 감옥 같은 지구에서 이제 숨을 곳은 어디인가 # 창작시 - 최정/2010-2012년 시 2010.12.06
이원 '2050년/시인 목록' 2050년/시인 목록 이원 사이보그 001: 서정시를 옹호하는 캐릭터. 권력 실세. 전속 로봇이 베스트셀러용 시의 최종 점검을 늘 맡아주고 있다 사이보그 002: 다장르 겸업을 하고 있어 일명 전투용 사이보그로 불린다. 뇌 개조 수술을 받은 최고의 전자 두뇌. 다혈질이나 예술적 안목이 탁월하다. 평소에는 ..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06
브레이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살아남은 자의 슬픔 브레이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나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브레이트 시집, ..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06
아프리카 민요시 배 고프거든 배 고프거든 호미질을 해야지 의사가 아는 유일한 처방이라지 부자와 가난뱅이 나는 부자이지만 언제인가는 죽게 될 거고 너는 가난뱅이이지만 언제인가는 죽게 될 거고 레오나드w. 두브 엮음, <아프리카 민요시집>(실천문학사, 1982) 중에서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05
구름에게 구름에게 최 정 막대기로 툭 건드리면 금방 울음 터질듯 네 안에 가둔 어둠 무서워 노을조차 숨겼니? 밤새 줄기차게 찬 비 # 창작시 - 최정/부평동 시절 시(1999-2009) 2010.12.05
거울 속의 그녀 거울 속의 그녀 최 정 영혼을 저당 잡힌 거울 속의 그녀 청춘을 탕진하고 주름살 세어보는 그녀 낯설다, 거울 속 어색하게 웃으려는 그녀 아직 화해할 수 없다 대신 빛나던 영혼 반품해 오라 요구하지 않겠다 # 창작시 - 최정/부평동 시절 시(1999-2009) 2010.12.05
여드름 여드름 최 정 고름도 제 살이라고 제대로 손대지 못했는데 간호사는 두 손으로 비틀어 피고름 짜낸다 아, 시원해 고인 슬픔 터지듯 너무 시원해 화끈거리는 상처 위로 레이저 쏟아진다 아, 따뜻해 습기 찬 어둠 꺼내 말리듯 저 빛이 너무 따뜻해 열꽃 진 자리 행여 열매라도 맺을라 향긋한.. # 창작시 - 최정/부평동 시절 시(1999-2009) 2010.12.05
가출 가출 최 정 고3의 봄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어느 날 친구가 교과서를 몽땅 맡아 달라고 했다. 학교를 떠나겠다고 했다. 대학 말고 다른 인생이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했다. 친구는 전교 1등이었고 학생회장이었고 공무원인 아버지도 있었다. ‘넌 너무 교과서적이야.’ 이 말을 남기고 .. # 창작시 - 최정/부평동 시절 시(1999-2009) 2010.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