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 짧은 글/그냥, 둘곳없는 이야기들

최성민 시인의 2번째 시집,『도원동 연가』

최정 / 모모 2011. 1. 8. 19:11

 

 

 

 

"흔하게 접하게 되는 하찮은 소재를 통해 생의 단면을 계시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최 시인의 형상화 능력은

 결코 범상한 것이 아니다. 그를 가리켜 일상성의 깊이를 파헤쳐 감동적으로 그리는 서정적 리얼리즘의 화가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 이가림(시인, 인하대 명예교수)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그의 노력은 시의 촉수가 점지하는 대상들에 손톱만치의 더함이나 뺌도

 없이 정직하게 투영되어 있다."  - 최 준(시인)

 

 

 

변비便祕

- 청천동 시대 2

 

 

                    최성민

 

 

 

그때

세상으로 난 길 모두가

천 길 낭떠러지로 보였지

보따리 몇 개 들고 이사 온

물 맑은 동네 청천동,

가슴엔 막 겨울이 시작되고 있었지

 

하늘에 낀 먹구름 마냥

검은 루핑 천막 뒤집어쓴 지붕

화장실 대신 변소가 마당가에 있었지

 

나이 어린 너는

변소 앞에서 서성이며 울고 있었지

무서움과 서러움으로

심한 변비에 시달리며

 

는개 흩날리는 칠흑 같은 밤

변소에 앉아 흐느끼며, 나도

인생의 변비를 앓고 있었지

 

 

 

 

 

 

                        나는 아직도 이 시에 나오는 청천동 집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최성민 선배님이 빚더미를 안고 들어간 곳이 청전동 집이다.

이사하는 날도 갔었고, 장마철 비가 새는 지붕에 천막을 씌우는 일을 돕기도 했었다.

변소 앞에서 집을 지켜주던 누렁이도 기억한다.

 

<매립> 동인들이 이 집에서 일주일에 2번은 모여 세미나도 했고 술도 참 많이 먹었다.

세미나를 핑계로 자주 모이던 시절이 청천동 집이었으니

우리끼리 작당해서 '청천동 연구소'라 이름을 짓고 무슨 책인가를 내보겠다고

더 자주 모였다. 결국 연구(?)도 못하고 동인지 내는 일도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시를 쓰겠다고 모두들 시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있던 시절이기도 했다.

넉넉하지는 못했지만 꿈을 꾸던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