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시 - 최정/2010-2012년 시

상고 시대를 아느냐

최정 / 모모 2011. 1. 17. 06:56

 

 상고上古 시대를 아느냐

 

 

 

                           최 정

 

 

 

 

  1.

 상고 시대를 아느냐고 물었다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다고 답해 드렸다 하얀 수염이 긴 백발의 할아버지는 안타깝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허리가 꼿꼿한 할아버지에게 지팡이는 장신구 같았다 읍내 가는 버스가 한참만에야 왔다

 


  2.

 빙판길에 넘어져 퉁퉁 부은 내 팔목을 잡고 엄마가 데려간 곳은 그 할아버지네 집이었다 침을 꺼내놓고 무서우면 고개를 돌리라고 했다 팔목을 눌러보는 할아버지 손이 이상하게 따스했다 검은 피가 꽤 나오고 붓기가 가라앉았다

 


  3.

 동네 사람들만 찾던 침쟁이 할아버지네 집 앞에 어느 날부터인가 긴 줄이 생겼다 어떻게 소문이 퍼졌는지 도처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작은 동네가 북적거렸다 모든 기운을 쏟아내듯 할아버지는 수년간 매일 침을 놓다 조용히 95세에 돌아가셨다

 


  4.

 상고 시대를 아느냐, 이십년도 훨씬 더 지난 오늘 문득 할아버지가 다시 물어온다 사계절에 순응하며 욕심 없이 소박하게 살던 옛사람들을 아느냐, 백세가 넘어도 동작이 쇠하지 않고 맑은 정신을 지녔던 옛사람들의 도를 아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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