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시 - 최정/2010-2012년 시

304호의 이별 방식

최정 / 모모 2011. 1. 29. 14:20

 

 304호의 이별 방식

 

 

 

                                             최 정

 

 

 

 S# 1

 창문 깨지는 소리와 함께 외마디 비명으로 304호가 뛰쳐나왔다. 나는 잠이 들락 말락 뒤척이다 다급하게 불을 켰다. 도둑이 들었다는 생각에 급히 겉옷을 챙겨 입었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 헤어져! 사귄지 100일인데 그 새 어떻게 딴 놈을 만나! 남자가 저주를 퍼붓듯 횡설수설 고래고래 악을 쓴다.

 

 S# 2

 살려 주세요! 이 남자가 날 때려요, 경찰을 불러 줘요! 304호가 같이 악을 쓴다. 현관문을 나란히 맞대고 사는 나는 문 앞에서 주춤한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달려와 남자를 막아 세웠나 보다. 절대 손 안 댔어요. 핸드폰만 던졌을 뿐이에요. 좋아요, 차라리 경찰 불러요! 이 여자가 어떤 식으로 배신했는지 전부 다 밝히고 싶어요! 취한 남자가 씩씩대며 억울해 한다.

 

 S# 3

 꼭 이렇게 지저분하게 헤어져야겠니? 내가 너 보기 싫다고 했잖아! 304호도 취했는지 목소리마저 비틀거린다. 가늘고 높은 음성 탓인지 나는 304호가 긴 생머리의 여자일거라 추측해 본다 .그래, 꺼져 줄게! 딴 놈 만나서 어디 잘 사나 두고 보자! 남자가 주인집 아주머니 손에 끌려 내려간다. 쾅, 304호 문이 닫힌다. 내 마음도 쾅, 썰렁해진다.

 

 S# 4

 주인집 아주머니가 얘기를 들어주고 달래 주었는지 한참 만에 착 가라앉은 남자 목소리가 304호 앞에서 다시 들린다. 문 좀 열어줘,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네 얼굴 보고 할 얘기가 있어. 다시는 널 볼 일 없을 거야. 풀이 죽은 남자의 목소리가 애처롭다. 나는 읽던 책에 집중할 수가 없다. 돌아서지 못하는 사랑은 불편하다.

 

 S# 5

 304호는 깊은 침묵에 빠져있다. 남자는 조용조용 계속 애원한다. 마지막으로 꼭 할 말이 있어. 제발 부탁이야. 열어줄 때까지 기다릴게. 영하 10도를 밑도는 날인데 미련하다. 나는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다. 304호는 끝내 대답이 없다. 사나운 바람 소리만 지나간다. 나의 떠나간 사랑도 지나간다. 불면증처럼 겨울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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