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시 - 최정/2010-2012년 시

생매장은 싫어요

최정 / 모모 2011. 1. 3. 17:54

 생매장은 싫어요

 

 

                          최 정

 

 

 

 밤마다 꿈에 시달려요, 구덩이에 던져져 생매장 당하는 악몽을 꾸어요,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없어요, 무서워요, 너무 무서워서 숨이 막혀요, 차라리 목을 졸라 주세요, 아니 단번에 죽을 수 있게 전기 충격을 주세요, 독약을 구해 주세요, 차라리 아우슈비츠의 독가스는 없나요?

 

 나는 발굽이 2개라서 슬퍼요, 독감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집단 학살을 당하고 있어요, 나의 피와 살이 당신의 피와 살이 되는 운명으로 살아온 게 잘못인가요? 농약에 찌든 사료와 독한 항생제를 먹인 게 누구인가요? 인공수정으로 엄청나게 숫자를 늘린 게 누구인가요?

 

 엄마, 여기는 끔찍하게 추워요, 우리는 가축이라서 인간들과 잘 살고 있는 거라고 엄마가 가르쳐 주었잖아요? 그런데 너무 추악해요, 산 채로 눈을 치켜뜨고 구덩이에 안 들어가도 되는 동물권은 없나요? 내게 손이 있다면 스스로 목을 매고 싶어요, 친구가 편히 죽을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요

 

 내가 만약 이 살육에서 살아남는다면, 자식들에게 특별한 유전자를 물려주기로 결심했어요, 농약에 찌든 사료와 독한 항생제를 또다시 먹게 된다면, 그 살점이 인간들의 입에 들어가는 순간, 강력 바이러스로 돌변, 핵폭탄급 전염성에 놀란 인간들이, 이웃과 이웃끼리 집단 학살할, 눈 뜨고 생매장 당할, 나의 분노와 공포, 슬픔과 고통을 새긴 유전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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