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읽기/좋은시 읽기

윤성학 <내외>

최정 / 모모 2010. 11. 29. 14:27

내외

 

 

                               윤성학

 

 

 

 

결혼 전 내 여자와 산에 오른 적이 있다

오붓한 산길을 조붓이 오르다가

그녀가 보채기 시작했는데

산길에서 만난 요의(尿意)는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가혹한 모양이었다

결국 내가 이끄는 대로 산길을 벗어나

숲속으로 따라들어왔다

어딘가 자신을 숨길 곳을 찾다가

적당한 바위틈에 몸을 숨겼다

나를 바위 뒤에 세워둔 채

거기 있어 이리 오면 안돼

아니 너무 멀리 가지 말고

안돼 딱 거기 서서 누가 오나 봐봐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곳에 서서

그녀가 감추고 싶은 곳을 나는 들여다보고 싶고

그녀는 보여줄 수 없으면서도

아예 멀리 가는 것을 바라지는 않고

그 거리, 1㎝도 멀어지거나 가까워지지 않는

그 간극

바위를 사이에 두고

세상의 안팎이 시원하게 내통(內通)하기 적당한 거리

 

 

 

윤성학의 『당랑권 전성시대』(창비, 2006) 중에서

 

 

'# 시 읽기 > 좋은시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희덕 '물소리를 듣다'  (0) 2010.11.30
이세기 '침'  (0) 2010.11.30
이세기 '이작행'  (0) 2010.11.30
정희성 <태백산행>  (0) 2010.11.29
김선태 <조금새끼>  (0) 2010.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