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읽기/좋은시 읽기

김선태 <조금새끼>

최정 / 모모 2010. 11. 29. 14:30

 

조금새끼

 

 

                                           김선태

 

 

 

 

 

 가난한 선원들이 모여사는 목포 온금동에는 조금새끼라는 말이 있지요. 조금 물때에 밴 새끼라는 뜻이지요. 조금은 바닷물이 조금밖에 나지 않아 선원들이 출어를 포기하는 때이지요. 모처럼 집에 들어와 쉬면서 할일이 무엇이겠는지요? 그래서 조금은 집집마다 애를 갖는 물때이기도 하지요. 그렇게 해서 뱃속에 들어선 녀석들이 열 달 후 밖으로 나오니 다들 조금새끼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 한꺼번에 태어난 녀석들은 훗날 아비의 업을 이어 풍랑과 씨우다 다시 한꺼번에 바다에 묻힙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인 셈이지요. 하여, 지금도 이 언덕배기 달동네에는 생일도 함께 쇠고 제사도 함께 지내는 집이 많습니다. 그런데 조금새끼 조금새끼 하고 발음하면 웃음이 나오다가도 금세 눈물이 나는 건 왜일까요? 도대체 이 꾀죄죄하고 소금기 묻은 말이 자꾸만 서럽도록 아름다워지는 건 왜일가요? 아무래도 그건 예나 지금이나 이 한마디 속에 온금동 사람들의 운명이 죄다 들어있기 때문 아니겠는지요.

 

 

 

 

 

 김선태의 <살구꽃이 돌아왔다>(창비, 2009)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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