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준비 시절/예비 농부의 농사 배우기(2011년)

산골 유기농 농장 - 예비 농부의 첫답사

최정 / 모모 2011. 5. 20. 21:51

2011년 5월 4일 수요일. 맑음 

 

대강의 짐을 챙겨서 5월 4일 강원도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우선 답사 겸 친환경 유기 농업을 배울 현장을 돌아볼 참이었다.

지난 가을에 친구를 만나러 가보기는 했으나 이번에는 좀 다른 의미가 있었다.

무모하다고 할지는 모르겠으나 농사를 배워보겠다는 계획을 이번에야 말로 실천에 옮기는 첫걸음인 셈이다.

 

도시 생활에 찌들다 보니 사람들은 말년에는 시골에서 텃밭이나 일구며 늙어가고 싶다고 말하곤 한다.

나도 사실 그런 축이었다.

작은 산 아래 작은 집 한 칸에 살면서 텃밭을 가꾸고 글도 쓰며 늙어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사실 이런 꿈은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땅과 집을 살 돈이 필요하고 텃밭이나 일구려면 통장에 두둑한 목돈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더구나 부양할 가족이라도 있다면 어떠한가.

그러다 보니 이런 꿈은 그야말로 꿈으로 끝나기 일쑤이다.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시대에 살다보니 중후반기 삶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같은 것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농사일을 배워보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럴듯한 포부가 있어서가 아니다.

단순하게 자연으로, 내 몸을 쓰는 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일하고 소박하게 먹고 살며 글도 쓰며 새로운 삶을 배워볼 참이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더 체력이 떨어지기 전에 농촌에 내려가

온갖 생명이 자라고 소멸하는 과정을 배우며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경험도 하고

육체적인 고생도 해보며 소박하게 늙어갈 곳을 찾고 정착하는 시간을 만들 참이다.

 

도시에서 늙어간다는 것은 끔찍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부 부유층에게 도시는 천국이 될 수 있겠으나 서민들에게는 생존을 위해 전전긍긍하는 곳이다.

도시에서는 숨 쉬는 것조차 돈이 든다.

하루에 아무 일도 안 하고 숨만 쉬고 있어도 도시에서는 1만원의 돈이 든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도시의 삶은 숨 막히는 생존의 전쟁터를 절대 벗어날 수 없다.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말이다.

 

내 손으로 먹을거리를 생산하여 먹고 사는 일은 생각보다 엄청난 도전이 될 터이지만

사회적인 온갖 욕심들을 버린다면 대신 다른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를 짓밟지 않아도 될 것이며, 짓밟히지도 않을 것이며

내가 먹고 쓰는 것들이 환경을, 자연을, 지구를 파괴하는 길로만 치닫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근래에 친환경, 생태농업을 추구하며 일부 젊은 세대들이 귀농을 이어가며 농촌의 명맥을 이어가고는 있지만

아직 농촌은 젊은 세대들에게 버려진 곳이다. 이 초고속 자본주의가 버린 곳이다.

세련된 의식주로 포장된 유리병에서 자라난 세대들에게 농촌은 너무 불편하고 폼이 안 나는 곳일 것이다.

 

이런저런 많은 생각들을 하다가 읍내 터미널에 내렸다.

규모가 작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느낌의 읍내 터미널에서 또 한참 버스를 기다려 갈아 탔다.

읍내를 10여 분쯤 벗어나자 버스가 산과 산 사이로만 달린다. 새잎이 올라오는 산빛에 눈이 다 시원해진다.

800여 미터가 넘는 고개를 넘어 가고서야 고랭지 농업을 하는 산골 마을 앞에 도착했다.

 

 

 

                

             작년에 더덕을 심은 밭에 싹이 올라오고 있다.                                           길가에서 만난 민들레꽃

 

 

 

                

                내가 머물 곳, 해발 700여 미터에 위치한 집                                    작은 강아지 '밍밍'이 꼬리를 흔든다.

 

 

 

경사진 길을 올라가면서 띄엄띄엄 몇 집을 만나고 그 길의 끝자락에 집 한 채가 보였다.

이곳의 높이가 720미터라고 하니 웬만한 산 높이에 서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옆집이 한 채 있기는 하지만 처음 도착했을 때의 느낌은 유배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배지, 왜 이런 단어를 떠올린 것일까?

어쩌면 내 삶에서도 유배의 기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주변을 둘러보니 정말 산 아니면 밭이 다였다. 높이 때문인지 주변의 산들이 도리어 낮아 보였다.

온갖 소음에 익숙한 도시에서 막 빠져나왔기 때문일까? 사방이 너무 고요했다.

낯선 이방인을 경계하는 개들 짖는 소리만 컹컹 울린다.

이 높이에 넓은 밭들이 꽤 많았다.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는 지역다웠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온도가 내려가는 느낌이 피부에 와 닿을 정도였다.

집안에서 방문을 열면 차가운 공기가 확 밀려 들어온다. 이렇게 큰 일교차가 싱싱한 채소류를 키워내고 있나 보다.

밤에 마당에 나와 보니 별이 아주 가깝게 보였다. 북두칠성이 바로 머리 위에서 돌고 있는 착각이 들었다.

아직 이곳은 밤 공기가 무척 차가워서 아쉽게도 별을 오래 감상할 수가 없었다.

몸에 닿는 밤공기가 차가워 금방 들어오고야 말았다.

 

이곳 농장에서 농사를 배우고 있는 친구와 막걸리 한 잔을 하고 잠을 청했다.

낯선 곳에서는 좀처럼 쉽게 잠들 수가 없다.

뒤척이다가 눈을 뜨니 작은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달빛이 눈부셨다.

참 까마득하게 잊고 지낸 달빛이다. 달빛이 저렇게 밝을 수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