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준비 시절/예비 농부의 농사 배우기(2011년)

혹독한 첫 신고식 - 감자 심기

최정 / 모모 2011. 5. 21. 20:02

2011년 5월 5일 목요일. 맑음

 

 

모처럼 날이 화창하게 개인 날이다. 내가 밭에서 일을 해보는 첫날.

4월말부터 비가 일주일 동안이나 오락가락 한 탓에 일이 많이 밀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날은 동네 전체가 무척  분주한 날이다.

오늘은 농장 식구들이 아랫집 아저씨네 감자심기 품앗이를 해주기로 한 날이다.

아침 일찍 밭에 도착하니 오늘 심을 씨감자 자루가 잔뜩 있었다.

한 1200평 정도 심을 예정이란다. 오늘 과연 다 심을 수 있는 것인지 나는 전혀 짐작도 안 되었다.

 

 

             

                        씨감자가 담긴 자루들                                                                     비탈진 감자밭

 

 

 

 

아저씨네 식구들, 멀칭기(비닐 씌우는 기계)를 모는 아저씨들, 우리 농장 식구들을 합치면 꽤 여럿이었다.

어쩌면 오늘 내로 아저씨네 감자 심기가 다 끝날 수도 있겠다. 

평수가 넓은 밭들이 많다 보니 비닐 씌우는 것(멀칭)은 기계로 하고 있었다.

어릴 때 잠깐 비닐 씌우는 것을 도와본 일이 있어 낯설지는 않았지만 기계로 하는 것은 처음 본다.

기계로 해도 사람 손은 곳곳에 가기 마련이었다.

이랑 끝 부분은 따로 흙을 덮어 주어야 하고 중간중간 흙이 덜 덮인 곳은 일일이 점검해서 삽으로 흙을 덮어주어야 했다.

그래도 사람이 씌우는 것보다 무척이나 빨랐다.

 

 

 

             

                 파종기를 이용해 감자를 심고 있다.                                          삽으로 씨감자 위에 흙을 덮고 있다.

 

 

 

나는 처음에 씨감자를 심은 곳에 삽으로 흙을 덮어주는 일(복토)을 했다.

너무 흙을 많이 덮어도 안 되고 적당한 양의 흙을 덮어주어야 한다.

너무 많이 흙을 덮어 주면 감자 싹이 올라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한다.

삽을 잡는 것도 지금 내가 밭에 서 있는 것도 낯선 일이었지만 마음만은 편했다.

사실은 오늘 하루 가르쳐주는 대로 잘 따라해서 일이나 잘 마칠 수 있을까 내심 걱정되기도 했다.

흙 덮는 일이 좀 익숙해지자 금방 허리가 뻐근해진다.

안 해본 일을 해 보고자 감자 심기에 나서 보기로 했다. 설명을 듣고 2인 1조로 감자 심기를 했다.

한 사람은 파종기를 들고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을 내면

다른 한 사람은 통에 씨감자를 잔뜩 담아 어깨에 걸고 씨감자를 하나씩 파종기 구멍에 던지듯 넣는다.

처음에는 익숙지가 않아 내가 던진 씨감자가 다른 곳으로 튕겨져 나가곤 했다.

 

일정한 속도에 익숙해지자 이제는 어깨가 문제였다. 씨감자를 짊어진 통의 무게가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 와중에 아랫집 아저씨와 또다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궁금한 것들을 물어볼 수 있었다.

여름에 감자를 수확하는 줄 알았는데 이곳에서는 캐지 않고 가을까지 그냥 둔다고 했다.

감자를 심은 사이사이에 배추를 심을 예정이란다. 고랭지 이모작인 셈이다.

고지가 높은 이곳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5, 600미터 지대에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한다.

배추를 뽑을 때 감자가 같이 딸려 나온다고 하니 신기한 일이다.

 

아저씨네가 일반농에서 유기농으로 바꾼 지가 11년 정도 된다고 했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안 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았다.

반어적으로 유기농을 '천치 같은 짓'이라 말씀하셨지만 이미 10년이 넘게 친환경으로 농사를 짓고 있으시다.

연세에 비해 몸도 단단하시고 허리도 굽지 않으셨다.

자기 자식들도 도시로 나가고 농사를 짓지 않으려고 하는데 뭐 하러 이런 힘든 일을 배우려 하느냐 물으신다.

나는 웃으며 다소 싱겁게 말씀드렸다.

"그냥 제 손으로 제가 먹을 거를 길러보고 싶어서요~"

아저씨 입장에서는 내 도전이 이해가 안 될 것 같았다.

 

오전 9시가 좀 넘었는데 오전 새참이 나왔다. 거의 아침 식사 수준이었다.

낮 12시가 넘었을 때는 점심이었다. 아주머니께서 참 푸짐하게도 준비하셨다. 점심 매뉴가 감자탕이었다.

머위, 풀고비 같이 처음 먹어 보는 나물도 있었다. 몸을 움직이니까 먹는 양이 팍팍 늘어난 느낌이다.

오후에는 오후 새참, 그리고 저녁 겸 해서 통닭을 먹었다. 

하루 종일 먹은 양만 해도 어휴~, 난 원래 소식을 했었는데 말이다.

일이 고되다 보니 잠깐씩 쉬면서 힘을 충전하기도 하고 새참 때는 30분에서 1시간 정도를 쉰다. 

금방 새참 때가 오고 밥 때가 왔다. 이런 시간이 없었다면 하루가 엄청 길었을 것이다.

새참의 중요성이 팍팍 느껴진다. 순식간에 하루가 가는 느낌이다.

 

 

 

             

                     비탈진 밭에 감자를 다 심었다.                                                 근처 평지밭에도 감자를 다 심었다.

 

 

 

언제 다 심을까 했는데 일손이 많은 날이라서 오전에 비탈진 밭을 끝내고 오후에는 평지밭에 더 심었다.

오후 일은 좀 손에 익어 나아지기는 했지만 문제는 씨감자통을 맨 어깨였다. 어깨가 묵직했다.

'몹쓸 근육'을 지닌 내게 종일하는 육체 노동은 낯선 일이긴 하다.

대학 때 농활 갈 때나 이렇게 해봤지 처음이지 않을까 한다. 농활 때는 20대 초반이니 힘이 남아돌 때였고...

농사일이 몸에 익숙해지고 일근육이 생기려면 나에게는 시간이 꽤 필요할 것 같다.

오후 4시즘에 드디어 감자를 다 심었다.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역시 여럿이 하니까 좋긴하다.

 

 

 

        

                                                      밭 옆에서 만난 개구리와 개구리알들

 

 

 

아저씨네 일이 일찍 끝나기는 했지만 내일은 우리 농장 감자를 심는 날이다.

내일은 맑다고 하지만 모레는 비가 또 내린다는 일기예보이다.

그러니 오늘, 내일은 빡빡하게 무리를 할 수밖에 없다.

이 시기를 놓치면 큰 일이기 때문이다. 심을 시기에 맞추어 심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농장의 감자밭에 가서 내일 일을 위해 조금이라도 멀칭(비닐 씌우기)을 해 놓아야 했다.

집에 돌아와 씻기도 전, 나는 근육이 더 뭉치기 전에 피로를 풀고자

스스로 다리, 어깨, 팔 등에 침을 찔렀다.

1000미터가 넘는 산에 등산을 갔다 온 것도 아닌데 저절로 많이 찌르게 된다.

사실 내가 뒤늦게 농사일을 배우려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침뜸을 배운 덕분이다.

웬만한 것은 스스로 몸을 다스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런 시골에서 병원 한번 가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또 이런 근육통을 풀자고 쉽게 병원에 갈 일인가.

종일 밭에서 처음 일을 해보았다. 온몸의 근육들이 충격을 받을 만한 일이다.

그동안 머리만 쓰고 살았으니 이제 몸도 쓰면서 살아볼 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