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준비 시절/예비 농부의 농사 배우기(2011년)

산골에서 아가씨들이 소가 된 사연

최정 / 모모 2011. 6. 13. 21:28

  

   본격적으로 풀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 동안은 양상추, 양배추, 브로컬리 등을 심느라고 바빴는데

   어느덧 풀들이 솔솔 올라오고 있다. 그냥 자라는 것이 아니라 무진장 빠른 속도로 자란다.

   작물들이 어느 정도 크면 풀들이 그늘에 가리고 작물에 눌려 괜찮다. 풀 관리를 못하면 농사는 실패다.

   모든 영양분을 풀이 몽딸 섭취해 버리는 것은 물론, 작물 보다 더 크게 자라면 작물이 밀려서 크지를 못한다.

 

   유기농에서도 풀을 잡을 수 있는 약으로 '목초액'이 있기는 하다. 천연 재료로 만든 것이라 허용된 풀약이다.

   그런데 우리 농장주인 '오체 아빠'는 목초액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뿌리는 일도 큰 일이고, 가격 문제도 있을 테지만 목초액만으로는 풀이 자라는 것을 막는 데에 한계가 있기도 하다.

   김매기를 잘 하면 풀이 곧 거름이 될 수도 있을 터이다.

   

   보통의 김매기는 괭이로 긁어서 김매기를 하거나, 작은 밭은 호미로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시간이 엄청 걸린다. 밭의 규모가 기본 1천평, 2천평이다 보니 괭이로 긁어내는 것도 일이다.

   이래저래 우리 농장에서는 인걸이(사람이 소처럼 보습을 끄는 일)로 김매기를 많이 한다.

 

   처음에는 혼자 끌었다. 허리에 보습에 연결된 끈을 매고 그냥 끌면 된다.

   뒤에서 잡는 사람이 매우 중요하다. 비닐이 벗겨지지 않도록 조정을 해야 하고 힘껏 밀어야 한다.

   부부가 농사를 지으면 보통 여자가 끌고 남자가 뒤에서 조정을 하며 밀곤 한다.

   모두들 인걸이가 힘들다고 말했다. 끌 때 정말 용을 쓰듯 온몸으로 밀고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고지 300미터에 있는 양배추 밭에서 처음 인걸이를 해 봤는데 땅이 딱딱하고 돌도 있어서 쉽지 않았다.

   골을 몇 번 왔다갔다 하면 숨이 턱에 차고 허벅지 근육이 팽팽해진다.

   마치 천 미터가 넘는 가파른 산에 배낭을 메고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평소 등산을 좋아하고 즐긴 탓에 그냥 힘을 쓰며 앞으로 끌고 나가는 일이 내게는 웬지 익숙했다.

   다른 사람보다 앞으로 쭉쭉 나간다고 해서 농장 식구들이 나에게 '최인걸'이란 별명을 붙여 주었다.

   하, 나에게도 잘 하는 일이 있었구나!

 

   아무튼, 이 인걸이 때문에 나는

   연약한 시인을 꿈꾸었으나 알고 보니 뼈대있는 농부의 피를 발견했다며 다같이 엄청나게 웃었다.

   '오체 아빠'가 다른 사람과 달리 나에게는 뼈대에서 밀고 나가는 힘이 느껴진다는 말을 한 것도 있고

   우리 부모님이 농부였으니 이러나저러나 뼈대 있는 것은 맞는 말이다.^^

 

 

                 

            해발 300미터 양배추 밭 인걸이 - '최복토' 양(5/26)                       해발 700미터 브로컬리 밭 인걸이 - '밍밍 언니'(6/6)

 

 

                 

            인걸이 전의 브로컬리 밭. 풀이 많이 자라 있다. (6/6)                   인걸이 후의 브로컬리 밭 - 풀이 흙에 갈아 엎어져 있다.

 

 

                          2011년 5월 13일에 브로컬리 모종을 심었는데 제법 크게 자라 있다. 풀도 같이 팍팍 자랐다.

                       풀이 자라는 속도는 정말 무섭다. 밭에 심기를 한 후, 열흘이면 풀뿌리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이때 미리 인걸이를 하면 더 쉽다. 풀이 자라 뿌리를 내리면 뿌리의 힘 때문에 인걸이도 그 만큼 힘이 든다.

 

 

                 

          혼자 끌기가 힘들자, 한 사람이 옆에서 보조를 하며 둘이 같이 끌었다. 옆에서 한 사람이 줄을 잡고 당겨주면 힘이 덜 든다.

 

 

 

6월 6일 월요일. 브로컬리 밭과 양상추 밭에 인걸이를 하기로 한 날이다.

아침부터 신경 써서 새참을 챙기기에 바빴다.  몇 고랑 인걸이를 하고 나면 급격하게 열량이 딸린다.

사람이 소처럼 끌는 일이기 때문에 목도 탄다. 힘을 많이 쓰는 일이라 열량이 높은 새참을 단단하게 준비했다.

나는 몇 번 왔다갔다 하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종일 인걸이를 한 날은 무척 노곤하다. 다른 날보다 일찍 잠들게 된다.

덕분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도록 몸의 리듬이 확 바뀌었다.

그러나 음..., 밥 먹는 양도 훨씬 늘었다. 이날 늘어난 밥 양이 며칠 계속 이어졌다.

나의 소식하던 습관이 여기서 끝인가? -_-;;

 

날이 더워지니까 역시 힘을 쓰지 못한다. 저번 보다 끄는 힘이 다들 떨어진 것 같다.

아랫집 아주머니가 옆에서 누가 같이 끌어주면 훨씬 낫다는 말을 떠올린 탓일가?

'오체 아빠'가 하우스 창고에서 '오체'가 쓰던 개 끈을 찾아 한 사람이 옆에서 끈을 잡고 보조를 하도록 했다.

다들 덜 힘들다고 좋아했다. 심리적인 것일까? 확실히 혼자 끄는 것보다 낫다.

몇 번 끌면 급격하게 기운이 부족해지기 때문에 대기자와 교대를 하면서 오전에 브로컬리 밭의 김매기를 마쳤다.

 

 

 

                

                                   셋이 끄는 것으로 인걸이가 진화되었다. 가운데가 뼈대 있는 '최인걸'의 모습

                                    '밍밍'이가 계속 우리를 따라서 고랑을 왔다갔다 한다. 더울 텐데 말이다.

 

                

                 무슨 특공대의 모습 같다.^^                                                                    가운데가 '밍밍 맘'이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셋이 끌었다. 둘이 하니 힘이 덜 든다고 우리가 좋아하자,

'오체 아빠'는 '오체'를 묶어 놓았던 개 끈을 풀어 셋이 끌도록 줄을 하나 더 맸다.

가운데 주되게 한 사람이 힘을 쓰고 양쪽에서 끈을 잡고 보조를 하니까 정말 힘이 훨씬 덜 들었다.

이 탓에 난데없이 우리의 사랑을 받고 살고 있는 커다란 청년 개인 '오체'가 불운을 겪었다.

더운 오후에 햇살이 뜨거운데, 난데없이 자기를 묶었던 끈 중의 하나를 가져 가버리니 끈이 짧아졌다.

우리가 만들어준 천막 집 그늘에서 쉬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 날부터 '오체'는 말 그대로 땡볕에서 종일 더위에 헉헉대야 했다. ^^ 

그것도 모자라 일교차가 큰 밤에는 차가운 밤 이슬을  다맞으며 잠들어야 했다.

결국 '밍밍 엄마'가 며칠 후에야 '오체'의 끈을 새 것으로 사다가 끈을 길게 매주었다. 

 

한 명은 가운데서 끌다가 대기하며 계속 교대로 하면서 양상추 밭의 인걸이를 잘 해냈다.

근처에서 고추밭 말뚝 작업을 하던 아랫집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우리들의 모습을 보시고 매우 재미있어 하셨다.

방송 기자를 불러 사진 찍어서 신문에 내고 싶다고 하셨다.

그럴 만도 했다. 몇 집 안 사는 700미터 고지대 산골에서 아가씨들 셋이 소가 된 모습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대기를 하며 밭둑에 앉아 보고 있으려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ㅋㅋ.

무슨 전투조나, 특공대 같다. 셋이 하니까 수다를 떨면서 끌 수도 있었다. 

힘들 때는 계속 먹을거리 얘기를 했다. 솥을 걸어 삼계탕을 해먹자 등등.

이렇게 셋이 끌면서 우리는 더 이상 인걸이 일을 두려워 하지 않게 되었다. ^^ 

나중에 내가 찍은 사진을 보며 우리는 또 큭큭거리며 웃었다.

 

 

 

                

                                                         6월 7일 화요일 오후에 남은 양상추밭 인걸이를 했다.

 

 

                       

                            6월 7일 오후에 감자밭 인걸이도 끝냈다. 점점 가속도가 붙는다. 이 감자는 5월 6일에 심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