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준비 시절/예비 농부의 농사 배우기(2011년)

돌밭에서의 고행 - 멀칭, 양배추 심기

최정 / 모모 2011. 6. 15. 19:13

2011년 6월 3일 금요일. 맑음. 돌밭에 멀칭하는 날

 

 

돌밭에서 일하는 일정이 잡히자, '밍밍 맘'과 최복토' 양은 돌밭과 관련된 악몽의 추억들을 떠올렸다.

돌이 너무 많아서 장난 아니게 힘들다는 것이다.

이 밭은 해발 600미터 정도에 위치해 있는데 농장에서는 차로 25분 거리에 있다.

힘쓸 것을 대비해 아침부터 새참, 점심, 저녁까지 먹을 음식을 챙기느라 바쁘게들 움직였다.

 

이 돌밭은 한 덩어리가 3천평이 넘는다.

땅 주인은 서울 사람인데 밭 옆에 작은 컨테이너 집을 앉혀 놓고 주말 농장처럼 가끔 오는 것 같았다.

전에는 논이었는지 흙도 단단하고 돌도 많아서 이 밭에서는 항상 손해가 난다고 한다.

다른 밭에서 남은 수익으로 이 밭에서 나는 손해를 메우는 식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장주 '오체 아빠'가 이 밭을 그냥 유지하며 농사를 짓는 것은 유기농 땅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일반농을 하던 땅에서 유기농 밭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최소 5-6년 정도 유기농을 해야 가능하다고 한다.

지금은 차로 30여 분 거리이지만 전에는 1시간이 넘는 곳에 살면서 이 땅에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유기농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고행을 자처하는 '오체 아빠'의 속마음을 내가 어찌 다 알겠는가.

'오체 아빠'도 이 밭을 관리하는 것이 힘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임대를 넘겼으면 하는 마음이 큰 것 같았다.

과연 이 돌밭에서 유기농을 이어갈 사람이 언제 나타나려나?

 

이런 사연으로 또 거리 문제도 있어서 이 밭에는 그나마 노동력을 적게 들이면서도

척박한 곳에서도 비교적 잘 자라는 작물을 심어야 한다고 한다.

작년에는 그냥 묵혀서 풀들이 지천으로 자라 광활한 필드로 변했다.

올해 또 묵힐 수가 없어 3천평이 넘는 땅 중에서 1500평만 밭을 갈아 엎어 양배추를 심기로 했단다.

 

 

                 

                                                   돌, 돌, 돌들. 트랙터에 눌린 밭이랑을 괭이로 모양을 잡아주고 있다.

 

 

                 

                                                돌 때문에 멀칭기로 비닐을 씌어도 비닐이 잘 씌어지지 않는다.

                                         멀칭기를 따라다니며 기계를 꽉 잡아주며 따라다니는 일이 생각보다 힘들었다.

                멀칭기가 지나간 후에 이랑의 양쪽 끝부분의 비닐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부지런히 흙을 퍼서 고정시켜 주어야 한다.

 

 

삼겹살을 가져가서 점심으로 먹었기에 망정이지 완전 기운이 부족할 뻔 했다.

농장에서 키운 연한 유기농 쌈채소들과 삼겹살의 궁합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정신 없이 먹었다.

돌이 많아서 무엇을 해도 힘이 배는 들었다. 괭이질도 그렇고 멀칭기를 따라다니는 것도 그랬다. 

'최복토' 양 혼자서 멀칭기를 따라다니는 것이 힘들어서 내가 잠깐 배워서 교대를 해주곤 했다.

멀칭기가 흙을 잘 덮도록 양손으로 기계를 꽉 눌러주는 것은 엎드려 뻗쳐 자세랑 비슷해서 양쪽 팔뚝과 어깨가 묵직해졌다.

종일 계속되는 괭이질은 손가락 마디의 통증이 되살아나기에 충분했다. 

그나마 위로가 된 것은 골짜기에서 규칙적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매우 시원했다.

그런데 이 세찬 골짜기 바람에 비닐이 자꾸 날아 올라서 애를 먹이기도 했다.

우리는 이곳은 수행처다, 고행처다 등등 온갖 농담을 하고 웃으며 피곤함을 잊으려 애썼다.

내일 당장 이곳에 양배추를 심어야 한다. 어떻게든 멀칭을 끝내야 한다.

밭의 조건상 우리들만으로는 부족해서 일꾼을 사 놓았기 때문에 우리는 부지런히 멀칭을 했다.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대강의 멀칭을 끝낼 수 있었다.

문제는 내일이다. 흙이 잘 퍼지지 않는 이 밭에 과연 하루만에 양배추를 다 심을 수 있을 것인가.

 

 

 

 

2011년 6월 4일 토요일. 맑음. 돌밭에 양배추 심는 날

 

 

오늘은 아랫집 아저씨, 아주머니도 오시는 것은 물론

해발 300미터의 마을에 사시는, '오체 아빠'가 잘 아시는 동네 아주머니 네 분도 오시고

총 12명의 일꾼이 돌밭에 양배추를 심는 날이다.

문제는 복토이다. 돌이 많아서 흙이 팍팍 퍼올려 지지 않아 속력이 나질 않는다.

이 복토의 속도에 따라 오늘 양배추를 다 심느냐가  결정될 것이다.

 

'밍밍 엄마'는 12인 분의 새참과 점심을 준비하느라 새벽까지 잠을 제대로 자지를 못했다.

일하기 힘든 밭이기 때문에 새참도 더 신경 써서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토스트, 국수, 제육볶음과 쌈채소, 채소전, 막걸리, 쥬스, 우유, 커피, 사탕 등 푸짐하게 준비해서 잘 먹었다. 

이 밭에 오면 반드시 점심에는 고기를 먹어주어야 한다는 게 우리들의 지론이다.^^

 

밭에 가보니 밤새 골짜기 바람에 비닐이 꽤 벗겨졌다. 이것을 우선 다시 손보느라 바빴다.

나와 '밍밍 언니'는 괭이로 비닐을 고정시키는 일을 얼추 끝내고 복토하는 일에 투입되었다.

다행히 '오체 아빠'와 '최복토' 양의 양배추 모종 심기의 속도가 달인급이다.

무서운 속도로 심어간다. 1500평을 이 한 조가 다 했다.

또한 단련된 아주머니들의 복토 솜씨가 내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아주머니들이라고 하지만 다들 60대의 연세이시다. 할머니라고 부르면 언짢아하신다.^^

나와 '밍밍 언니'는 둘이서 한 줄을 하면서 아주머니들을 따라 다녔는데

이 아주머니들의 수준급 수다가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해발 700미터 산골에서 수다에 목마르던 아랫집 아주머니가 합세하시더니 신이 나셨다.

종일 한 번도 끊어지지 않고 수다가 이어진다. 수다를 떨며 고된 일을 즐겁게 만들고 있으셨다.

자식, 부부, 동네 소식, 음식, 죽음, 질병, 농사, 드라마 등등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급기야 나중에는 서로 돌아가며 전래동화, 전설의 고향 이야기까지 하셨다.

이야기의 끝에는 그래서 이러이러하게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삶의 깨달음으로 정리하시고는 했다.

부모를 봉양하고 자식들을 도시로 내보내고 결혼 후의 자식의 삶까지도 걱정하시고

이제는 급기야 당신들이 죽을 때 장례식비라도 남기고 가야하지 않겠냐고들 하신다.

우리들 보고 웃으시며 "나이들어 봐라, 남는 건 입 밖에 없다."고 하셨다.

맞는 말이다. ㅋㅋ.

나이가 들면 기가 자꾸 위로 올라가 입만 살아 잔소리가 늘어난다는 침뜸 강좌 내용을 떠올렸다.

 

사는 건 뭘까? 늙어간다는 건 뭘까? 고단한 몸이지만 잠시 생각에 잠겨 본다.

이런 맑은 공기를 마시며 비옥한 흙을 밟으며 내가 땀을 흘린 만큼 땅에서 얻어 먹으며

살다가 죽으면 그것으로도 만족스런 삶이지 않겠는가.

우리는 왜 욕망의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갇혀 있는가.

산 속으로, 산 속으로 들어와 척박한 돌밭을 일구던 옛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모종을 싣기 전에 천연 재료로 만든 영양제와 벌레 방지 미생물을 뿌렸다.

                                    2-3일 전에 뿌려 주면 좋다는데 '오체 아빠'는 시간이 없어 당일 아침에 뿌렸다.

                                                비닐들이 날아가지 않도록 돌들로 눌러 놓았다. 아, 돌들!

 

 

                 

                                                                아주머니들 덕분에 양배추를 잘 심을 수 있었다.

 

 

 

아주머니들이 이 돌밭을 보시고는 못생긴 밭이다. 시래기 같은 밭이다 등등의 표현을 하셨다.

아주머니들은 차로 1시간이 넘는 동네에서 오셨기 때문에 저녁 6시에 보내드렸다.

복토를 다 끝내고 싶었는데 돌 때문에 속력이 안 나서 덜 끝내고 가시는 게 영 마음에 걸리시나 보다.

특히 척박한 곳에 양배추가 뿌리를 잘 내리지 못할까봐 매우 꼼꼼하게 눌러주며 복토를 하시느라 더 더뎠다.

우리 농장의 식구들은 해가 질 때까지 복토에만 몰두해서 어둑어둑하다 못해 거의 컴컴해질 때에야 끝낼 수 있었다.

나는 복토가 끝나기 한 시간 전에 이미 아웃 선언을 했다.

연속으로 괭이질을 하고 내가 제일 힘들어하는 복토를 종일 했으니 손마디가 시큰거렸기 때문이다.

'오체 아빠'와 '최복토' 양은 무서운 속도로 복토를 한다. 특히 '오체 아빠'의 복토 속도는 거의 기계 수준이다.

내가 한 이랑을 할 동안 거의 3-4이랑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오체 아빠'는 큰 복토기, '최복토' 양은 작은 복토기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사실 '밍밍 언니'의 복토 솜씨도 꽤 빠르다. 나도 요즘에는 좀 요령이 생겨서 좀 빨라졌기는 하다.

 

이틀 연속 무사히 돌밭에서의 고행을 끝냈다! 확실히 무리였다. -_-;;

그래서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나름 자축하며 막걸리를 몇 잔 마시며 뒤풀이를 했다.

아, 내일은 놀기로 한 날이다. 아랫집 아저씨네랑 모처럼 동해로 소풍을 가기로 했다.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동해로 가서 회를 먹고 바다를 보고 오기로 이미 약속을 해 놓았었다.

 

고라니 침입 방지용 망을 치러갔던 '오체 아빠'의 말을 들으니

양배추들이 시들지 않고 잘 살아 있다고 했다. 와, 다행이다. 알아서 잘 커주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