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준비 시절/예비 농부의 농사 배우기(2011년)

긴머리 아저씨네 농장

최정 / 모모 2011. 7. 9. 20:47

     

2011년 6월 9일(목), 6월 10일(금) 맑음

 

해발 300여 미터가 안 되는 곳에 위치한 '긴머리 아저씨네' 유기농 농장에서 이틀 동안 머물며 일을 배웠다.

집이 가운데 있고 밭과 하우스가 집을 둘러싼, 그야말로 아담하고 전형적인 농가의 모습이다.

긴머리 아저씨 부부가 귀농을 하신 것은 11년 전이라고 한다.

도시 생활을 접고 이곳 강원도로 왔을 때는 거의 빈손이었다고 한다.

돌투성이 밭을 온몸으로 일구어 지금의 농장을 가꾸었으니 지난 10년 세월은 모질었을 것이다.

그간의 어려움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은 유기농의 베테랑이 되셨으나 농사일에 익숙해지기까지의 고생담은 남얘기 같지 않았다.

예쁜 두 딸도 시골 생활에 적응하여 중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

 

긴머리 아저씨는 마른 체격에 매우 꼼꼼하시다.

귀농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하나라도 더 노하우를 가르쳐 주기 위해 열심히 설명을 해 주셨다.

전반적으로 꼼꼼하고 깔끔하면서 집약적이고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농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기농에 대한 설명을 들어도 아직 나는 경험과 아는 것이 빈약하여 다 흡수할 수가 없었다.

긴머리 아저씨의 아내인 언니는 농기구를 다루는 기초적인 것부터 세세하게 알려주셨다.

쉬워 보여도 농기구를 어떻게 잡고 다루냐에 따라 능률과 피로도 차이가 엄청 크기 때문이다.

 

 

                  

            가지밭 모습. 가지 사이에 쌈배추를 심어 놓았다.                                                     호박밭

 

가지가 쓰러지지 않도록 가지의 줄기를 노끈에 집게로 찝는 일을 했다.

인걸이, 괭이질 등의 힘쓰는 일만 며칠하다가 섬세한 일을 하려니 처음에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잘못하면 가지의 줄기가 부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지잎의 뒷면에 까끌까끌한 것들이 팔에 닿으면 자칫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한다.

까다로운 가지 농사 전문가답게 많은 설명을 들으며, 아저씨네 부부와 수다를 떨면서 작업을 했다.

농사는 힘도 필요하지만 섬세함과 꼼꼼함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가지 사이에 심어 놓은 쌈배추 수확도 일부 해 봤는데, 아직 고갱이가 단단하게 여물지 않아 며칠 더 두기로 했다.

배추 잎이 상할까봐 아주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되호박꽃                                                                      김매기 후의 되호박밭

 

호박꽃이 이미 피고 있었다. 호박 농사는 올해가 처음이라고 한다.

풀들이 작게 올라 오고 있어서 괭이로 긁으며 김매기를 했다. 풀이 크면 클수록 두세 배의 노동력이 들어간다고 한다.

그래서 아저씨네는 미리 선 김매기 식으로 부지런하게 풀관리를 하고 있었다.

20일 정도 후에 이 호박들이 커서 좀 나누어 주셨는데 정말 맛있었다.

호박전도 실컷 해 먹었고 된장찌개에 들어간 호박맛이 그만이었다.

 

 

                  

                                      샐러리 하우스                                                                   감자밭의 감자꽃

 

아저씨네는 올해 샐러리를 많이 심었다. 야채쥬스 가공용으로 계약 재배한 것들이다. 아주 잘 자라고 있었다.

감자밭에는 감자꽃이 활짝 피었다. 해발 700미터에 있는 우리 농장의 감자밭에 꽃이 피려면 멀었는데 말이다.

기후의 차이가 작물을 심는 시기와 수확 시기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암컷 '도토리'                                                            도토리 엄마인 11살 할머니 개 '밍키'

 

아저씨네는 3마리의 개를 키우고 있다. 좀 사납던 수컷은 밭가에 집을 마련해 주어 좀 조용해졌다고 한다.

아저씨와 귀농의 세월을 함께 보낸 '밍키'가 있다. 개의 나이 11살이니 완전히 할머니 개이다.

유치원생이었던 딸들이 붙여준 이름다웠다. ㅎ, 당시에 딸들이 '밍키' 만화에 빠져있었나 보다.

요즘 치매 증세가 있어서 가끔 주인 보고도 짖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

움직임도 매우 느리고 조용히 있는 '밍키' 와는 다르게 '도토리'는 애교도 많고 촐랑대며 사람을 좋아한다.

이 개들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농사 자금이 너무 부족하여(당장 비료를 사야 하는데) 이 개들을 팔아 돈 좀 마련하려고 했으나

두 딸들이 울고불고 말리는 바람에 차마 개들을 팔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귀농할 때는 반드시 초기 자본이 꼭 있어야 고생을 덜 한다고 강조하시면서 들려주신 이야기다.

 

 

                  

                             수컷 고양이 '나비'                                                               벼 사이에 몰려 있는 올챙이들

 

'나비'는 고양이답게 보통 깔끔한 게 아니다. 식사 때가 되면 어김없이 밥그릇 앞으로 온다.

아저씨를 무척 따르기 때문에 아저씨가 일하는 밭에 잘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옆 집에 '나비'의 색시가 있었는데 '나비'의 귀여운 새끼 고양이들을 키우고 있었다.

이 동네에 와서야 논에 있는 올챙이들을 볼 수가 있었다. 우리 농장이 위치한 곳은 산골이라 순전히 밭만 있다.

어릴 때 자주 봤던 올챙이들인데, 농약을 쓰면서 어느사이엔가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었다. 반가웠다.

 

 

                  

                              결구된 양배추 모습                                                                       양배추 수확

 

하우스에 심은 양배추를 수확했다. 칼로 밑둥을 자르고 거친 겉잎을 뜯어 낸 후에 박스에 담았다.

양배추가 참 단정하고 단단하게 잘 자라 있었다.

결구된 양배추의 크기를 가늠하여 일정한 무게가 되는 것을 수확했다.

포장할 때 기준이 되는 무게가 있기 때문에 저울에 달아보며 넉넉한 무게가 되는 것을 골라 땄다.

양배추는 그래도 다른 채소들에 비해 모양이 망가질 가능성이 적어서 박스에 담는 일이 수월했다.

박스 무게가 무거워서 수확할 때는 남자의 힘이 필요하다. 저장고로 나르는 것은 아저씨의 몫이었다.

이것이 다시 조합 사무실로 가서 하나하나 포장이 되어야 유통이 된다.

파종해서 기르고 관리하고 수확하고 다시 유통이 되기까지의 그 길고 고된 과정을 이런 현장에 와서야 깨닫게 된다.

우리가 밥상에서 만나는 것은 이렇게 온갖 정성이 들어간 것들이다. 그간 너무 잊고 살아왔다.

 

 

                  

                   브로컬리꽃. 우리가 먹는 것은 꽃이다.                                                       수확한 브로컬리

 

나는 그간 브로컬리를 사 먹은 적이 있었지만, 내가 먹는 것이 꽃인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브로컬리 이파리가 내 팔 길이의 반이상 만큼이나 길게 자란다는 것도 몰랐다.

저 큰 이파리 가운데에 영양가 덩어리인 꽃이 피어나는 것이다.

영양가 덩어리인 것은 온갖 벌레가 덤벼드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얼마나 맛있으면 벌레들이 몰려들까?

브로컬리 농사는 무지 까다롭다고 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수확 시기도 매우 잘 맞추어야 한다. 조금만 늦어도 꽃이 확 피어서 못 먹게 된다. 벌레 관리도 중요하다.

꽃 아래의 줄기를 잘라 작은 아파리를 두어 개 떼어내고 상자에 담았다.

큰 몸집에서 겨우 하나의 꽃을 따고 브로컬리는 뽑혔다.

곁 가지에서 또 꽃이 피기는 하지만 이곳의 저냉지 기후에서는 한 번만 수확할 수가 있다고 한다.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해발 7-800 미터의 고랭지에서는 이 시기에 또 심을 수가 있다.

수확한 후에는 일일이 저울에 따라 무게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해서 저장고로 옮겼다.

 

이날 갓 수확한 양배추와 브로컬리를 실컷 먹었다.

언니가 식사와 새참을 어찌나 맛있고 푸짐하게 해 주셨는지 이틀 동안 먹는 양도 늘었고 살도 쪘다.

각종 특별 요리를 사진으로 찍어 두었어야 했는데 아, 아쉬워라.

긴머리 아저씨는 막걸리를 무척 좋아하신다. 새참과 식사 때는 무조건 한두 잔씩은 마시는 것 같았다.

땀 흘린 후의 막걸리를 마셔봐야 진정한 그맛을 알 수 있다.^^

 

아저씨네 집 앞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다. 은행을 발효시켜 벌레약으로 쓰고 있는데 아주 좋다고 하셨다.

그간 막걸리, 꿀 등의 온갖 재료를 활용하여 유기농을 해오신 경험을 들을 수 있었다.

요즘에는 유기농 자재가 매우 발달하여 비료, 벌레약, 풀약 등 천연 재료로 만든 좋은 것들이 아주 많다고 한다.

 

'오체 아빠'가 운영하는 우리 농장은 스케일이 크고 굵직굵직하게 집중과 선택을 하며 관리된다면

긴머리 아저씨네 농장은 집약적이고 세밀하게 관리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극과 극의 체험이랄까? 아주 좋은 공부가 되었다.

밭관리, 농장 관리는 역시 주인의 성향, 철학,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마련일 것이다.

나중에 나의 밭을 관리한다면 내 밭은 어떤 밭의 모습이 될까?

ㅋㅋ.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시인의 밭은 어떤 모습이 되려나?

끙, 망하지나 말아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