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준비 시절/예비 농부의 농사 배우기(2011년)

해발 200미터 마을, 젊은 귀농 부부

최정 / 모모 2011. 7. 10. 14:00

     

2011년 6월 18일 토요일. 맑고 더운 날

 

오늘은 장거리로 원정을 가서 일손을 돕기로 한 날이다.

북쪽으로 2시간이나 트럭을 타고 달려간 곳은 해발 200미터에 위치한 유기농 농장이었다.

'똘똘이 스머프 아저씨네' 부부가 키운 양상추 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수확을 하고 있었다.

오전의 햇살이 벌써부터 따가울 정도였다. 

 

사실 아직 양상추의 고갱이가 단단하지 못해, 즉 결구가 다 되지 않아 며칠 더 기다려야 하지만

양상추의 밑둥부터 이파리들이 무르고 썪어가기 시작해서 갑자기 수확을 서두르게 되었다.

양상추들이 아주 잘 자라고 있다고 흐뭇해하며 며칠 뒤에 수확할 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체 아빠'가 방문했을 때 물러지고 있는 양상추를 발견하여 다급해졌던 것이다.

6월 7일에 잠깐 비가 내리고 한 달이나 넘게 가물고 뜨거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자 '똘똘이 스머프 아저씨'는 점적 호수를 이용해 양상추에게 충분한 물을 공급했다.

점적 호수는 하우스 안에만 설치하는 줄 알았는데 이 동네에서는 노지밭에도 설치를 한다고 한다.

이곳의 온도를 느껴보니 우리 농장이 있는 고랭지에 비해 무척 더웠다.

높은 온도와 과도한 물공급으로 인해 양상추 이파리들이 물러지고 썪어가는 게 아닌가 추측했다.

즉 지나친 관리와 정성이 오히려 화근이 된 것이 아닌가 하고 '오체 아빠'는 추측을 했다.

아, 어려운 일이다. 적당한 관리란 무엇인가?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르지도 않고...

비탈진 밭의 아랫쪽은 다듬는 과정에서 따내는 양상추잎들이 너무 많아 수확량이 무척 적었다.

다행이 윗쪽은 물빠짐이 괜찮아서 그런지 상태가 비교적 양호했다.

 

유기농 야채쥬스 가공용으로 계약 재배한 밭이라 약속한 양만큼 수확이 안 되면 큰 손해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똘똘이 스머프 아저씨'는 시종일관 밝게 웃으며 즐거워 하신다.

많은 시도와 경험을 통해 이미 수확량과 수익에 초월한, 욕심을 버린 모습이었다.

아저씨네 부부가 귀농을 한 지는 10년은 된 것 같은데,

아직도 끊임없이 즐겁게 농사 실험(?)을 하고 있으신 것 같아서 유쾌했다.

아저씨의 마른 체격으로 양상추 상자를 나르는 모습을 보고

안쓰럽게 느껴지는 폼이 연출되어서 '밍밍 엄마'와 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듣기로는 최고 학벌의 이력을 지닌 40대 초반의 젊은 부부이시다.

아저씨의 몸도 농부보다는 학자가 어울려 보였다. 그런데도 농부가 된 아저씨는 무척 행복해 보였다.

 

                 

                               양상추밭 사진                                                                           수확하는 모습

 

                 

                            상자에 담긴 양상추                                                                저장고로 옮겨 보관하기

 

정오가 다가오자 더는 일하기 힘들 정도로 더웠다. 바람조차도 더웠다.

우리가 있는 고랭지의 기후가 얼마나 서늘한 날씨였는지 정말 제대로 실감을 하는 날이었다.

뜨거운 햇살에 약한 '밍밍 엄마'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아저씨는 서둘러 점심을 먹자고 했다. 차로 15분쯤 달려간 곳은 '초계탕'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었다.

'초계탕'은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었는데 알고 보니 평양 음식이었다.

아, 이곳이 북쪽이다 보니 그럴만도 했다. 더구나 오늘은 토요일이라 관광객이 많아 식당은 무척 북적거렸다.

새콤달콤한 차가운 국물에 차갑게 식힌 삶은 닭이 들어간 '초계탕'은 시원해서 좋았다.

우리는 밭에서 막 가져온 양상추를 곁들어서 같이 먹었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관광온 부부가 우리가 가져온 유기농 양상추를 얻어 먹고 맛있다며 밭에 가보고 싶어했다.

'똘똘이 스머프 아저씨'는 그 부부를 밭으로 안내하고 공짜로 양상추를 넉넉하게 주기까지 하셨다.

농부의 인심도 참 좋다. 물러터진 양상추가 많아 속상할텐데 너털하게 웃으면서 인심까지 쓰신다.

 

오후 3시까지는 더워서 밭에 나가지 못하고 그늘에서 음료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똘똘이 스머프 아저씨'는 유독 이 양상추밭에서 계속 실패를 했다고 한다.

실패담만 엮어도 훌륭한 책 한 권이 나올 것 같다.

그 실패담을 듣는데 어찌나 재미있고 유쾌하게 말씀하시는지, 마치 성공담을 듣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특히 무 농사 이야기는 정말 잊을 수가 없다. 

한 해는 무 농사가 대박났다! 아, 나에게도 이런 날이 있구나 하며 너무 좋아서 사진도 찍어두고 신났는데,

알고 보니 그해 무 농사가 다들 풍년이었던 것이다. 결국 엄청난 가격 폭락! 무를 팔 데조차 없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땅을 파고 무를 저장해 두기로 했다. 좀 시간이 지나면 팔 수 있겠지 하면서..., 희망은 있었다.

포그레인을 불러 땅을 파고 정성을 들여 엄청난 양의 무를 차곡차곡 쌓아 밭에 저장했다.

그런데 겨울이 지나고도 팔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저장한 무를 다시 파 내는 비용을 들이느니 그냥 묻자, 화끈하게 결심하고

무를 묻은 그 밭에 다시 비닐을 씌우고 새로운 작물을 심었다.

그런데 봄이 되어 땅 속에서는 무가 아주 잘 썪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무를 저장해 묻어둔 자리가 폭삭 주저앉았다고 한다.

아, 그래서 다시 구덩이를 메우고..., 다시...

우리는 다 같이 배꼽을 쥘 정도로 웃으며 이 이야기를 들었다.

울어도 시원치않을 이런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낼 수 있는 내공은 어디가 오는 것일까?

 

'밍밍 엄마'와 나는 웃고 있었지만 우리의 귀농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지..., 다소 걱정을 해야 되지 않을까?

지금으로서는 한 해 먹고 살 정도만 건진다면 대박이라고 본다. 미래는 미래의 일!

 

저녁이 되자 새들이 몰려 들었다.

 

 

                 

                         콩밭. 호밀을 이용해 풀 관리하기                                                고추밭. 호밀 이용하여 풀 관리

 

저녁에 근처 귀농 학교 학생들이 와서 일손을 도왔다. 함께 귀농 학교에서 관리하는 밭들을 둘러 보았다.

유기농은 풀과의 전쟁인데 호밀을 심고 베어 놓으면 풀이 잘 자라지 못한다고 한다. 호밀을 이용한 풀 관리가 인상적이었다.

귀농 학교에서 농사를 배우는 학생들의 연령대가 참 다양했다.

누군가는 그래도 농사를 짓고 살고 싶어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아직은 멀었다.

농사를, 자연을 배반한 인간은 지금 얼마나 많은 재앙을 되돌려 받고 있는가.

 

저녁에는 감자탕까지 얻어 먹고 왔다. 여러모로 참 배가 부르다.

좋은 것을 먹었고 또 좋은 사람들을 알았다.

피곤함을 무릅쓰고 다시 2시간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밍밍 엄마'가 챙겨온 뼈다귀를 보고 '오체'와 '밍밍'이가 흥분을 했다.

새벽 1시가 다 되었는데 자다가 깬 두 마리 개들이 포식을 하고 다시 잠들었다. 쿨쿨.

나도 기절하듯 잠이 들었을 것이다.

 

                 

                         감자탕 뼈다귀를 먹는 '오체'                                           먹다가 졸려서 그 자리에 쓰러져 자는 '밍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