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준비 시절/예비 농부의 농사 배우기(2011년)

비오는 날 시금치 수확, 탑차 빠진 날

최정 / 모모 2011. 7. 12. 10:02

 

2011년 6월 24일 금요일. 종일 비 내림

 

 

            평소라면 시금치가 충분히 공급되는 시기라는데 올해는 어찌된 일인지 시금치 생산량이 부족한가 보다.

조합 사무실에서 급히 시금치가 필요하다고 연락이 왔다.

우리는 낡은 우비를 찾아 내고 비닐까지 몸에 두르고 시금치밭으로 향했다.

어제 내린 비로 시금치밭은 장화를 신은 발이 푹푹 빠졌다.

오락가락하며 쏟아지는 빗소리가 대단했지만 각자 칼을 들고 시금치 수확에 여념이 없었다.

비가 오니 더 속도를 올리게 된다.

 

비가 온 탓에 흙이 튀어서 시금치 상태가 엉망이었다.

많이 심지는 않았지만 일부는 이미 꽃이 피고 있어 수확이 불가능했다.

오늘 이 시금치 수확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어짜피 앞으로 비가 쏟아지면 더 건질 것도 없기 때문이다.

 

시금치 상태를 보니 흙범벅이라서 그냥 보낼 수 없는 상태였다.

할 수 없이 수돗가로 가서, 물에 흠뻑 담가 흙 묻은 것을 털어내는 작업을 해야 했다.

시금치 잎이 어찌나 연한지 살짝 힘을 주면 금방 부러져서 살살 다루어야 했다.

일일이 다 흙을 씻어 내고 다시 다듬는 일을 했다.

뿌리 길이를 일정하게 자르고 상한 잎은 떼어내어 상자에 담아 보내야 한다.

이것이 조합 사무실로 가면 다시 다듬는 과정을 거쳐 300그램씩 포장된다고 한다.

 

 

 

                 

                        장마철 일복장, 우비                                                                 시금치에 묻은 흙 씻어내기

 

 

                 

                         흙을 씻어낸 시금치들                                                                      다듬어 놓은 시금치들

 

 

            비가 오는 날 수확하면 힘이 3배 정도는 더 든다고 하더니 오늘 수확을 해보니 확실히 알겠다.

맑은 날이라면 밭에서 수확하면 간단히 다듬으면서 박스에 담아 보냈을 텐데

오늘은 일일이 흙을 씻고 다시 다듬는 일을 해야 했다.

더구나 비로 인한 강력한 습기, 이 습기는 몸을 가라앉게 한다.

멀쩡하던 몸도 비를 맞고 일을 하면 갑절로 피곤함을 느끼게 된다.

'밍밍 언니'는 한나절 일하더니 들어가서 쓰러져 자고 있다.

 

우리가 오늘 수확한 시금치를 포장하면 300봉지 좀 넘을 것 같다는데

오늘 힘쓴 것을 고려할 때 실제 농장으로 들어오는 현금은 얼마 되지 않는다.

아, 이 시금치들은 누구의 밥상에 오를 것인가?

이런 힘든 과정을 거쳐 포장되고 배달된 것인 줄은 모르고 먹게 될 것이다.

 

 

                 

          따라 다니다가 비에 젖은 생쥐꼴이 된 '밍밍'                                     비가 와도 청결함을 유지하는 신사 '오체'

 

 

오후에 잠깐 비가 그친 틈을 이용해서 양상추를 몇십 박스 추가로 수확했다.

유기농 가공 회사에서 양상추를 실으러 오는 날이라 물량을 맞추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제일 큰 탑차가 들어왔는데, 몇백 박스의 양상추를 싣고 나가는 길에 그만 도랑 쪽으로 차가 빠졌다.

동네 길은 대부분 포장되어 있는데 우리 밭으로 오는 길은 아직 흙길이었다.

'오체 아빠'와 아랫집 아저씨네 남자들만 남고 우리는 먼저 집으로 왔다.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나중에 들으니 포그레인 2대를 불러 그 큰 탑차를 끌어냈다고 한다.

운전자가 미숙하여 벌어진 일이었지만 '오체 아빠'가 포크레인 비용을 지불했다고 들었다.

미안했던지 인사도 없이 꽁지가 빠지게 후다닥 가버린 기사 아저씨도 일진이 참 안 좋은 날이다.

아, 양상추를 수확해서 나가기까지 우리 양상추밭은 참 우여곡절이 많게 되었다.

초반의 고라니 습격부터 오늘 운송용 탑차가 빠지기까지.

동시에 일어나기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한번에 다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건 양상추가 대박나려는 조짐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