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준비 시절/예비 농부의 농사 배우기(2011년)

비 맞고 훌쩍 커버린 풀들, 인걸이와 낫질

최정 / 모모 2011. 7. 13. 15:17

   2011년 7월 2일 토요일. 종일 매우 습하고 더움

 

일주일 넘게 비가 오더니 어제는 종일 맑았다.

오늘은 비가 오지는 않지만 매우 습해서 끈적끈적하다.

내일 비가 온다더니 큰 비가 올 것 같다.

비를 흠뻑 맞은 밭에서는 작물도 부쩍 자랐지만 풀들이 난리였다.

비가 오는 와중에 양상추 수확으로 바빴는데 풀관리하는 일이 급해졌다.

 

브로컬리밭 인걸이. 가운데 밍밍 언니, 양쪽에 밍밍 엄마와 최복토 양

 

 

오전에는 브로컬리밭 인걸이를 했다.

비가 와서 푹푹 빠지는 곳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 밭은 푹신한 편이라 사람용 쟁기를 끄는 데에 힘이 덜 들었다.

이제 3인조 인걸이의 틀이 잡혔다.

허리에 줄을 걸고 끌어야 하는 가운데 소의 역할이 힘을 가장 많이 써야 하는 자리이다.

이 가운데 소 역할은 주로 나와 '밍밍 언니'가 하게 되었다.

양쪽에서 손으로 줄을 잡아 당겨 주면서 힘의 균형을 잡아 주는 측면의 소 역할은

주로 '밍밍 엄마'와 '최복토' 양이 했다.

측면이 힘이 덜 드는 자리이지만 계속 줄을 잡고 걷는 만큼 계속 하다 보면 지치게 된다.

나와 '밍밍 언니'는 측면을 더 힘들어 한다.

차라리 확 힘을 쓰고 좀 쉬었다가,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확 힘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이렇게 해서 계속 교대를 하는 여성 3인조 인걸이는 정착을 하게 되었다. ^^

 

 

고라니가 먹은 브로컬리 보식. 녀석들이 많이도 뜯어 먹었다.

 

 

고라니 녀석들이 몇 번에 걸려 그물망을 넘어와 브로컬리를 엄청 뜯어 먹었다.

오늘에서 추가로 다시 심었다. 대박날 조짐이라며 위안을 해야지!, 끙.

땅이 젖어 있어서 복토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손으로 흙을 조금 모아 뿌리 부분을 꾹 눌러 주면 잘 큰다.

 

 

돌이 많은 양배추밭. 풀들이 야무지게(?) 자라고 있다.

 

 

양배추밭 인걸이. 1500평! 밭고랑도 길다.

 

 

와, 풀들! 양배추보다 더 크게 자라고 있다.

 

 

인걸이로 풀이 뒤엎어지지 않아 낫질을 하는 최복토 양. 귀농 청년(?)의 포스

 

 

오후에는 차로 30여 분 거리에 있는 양배추밭에 갔다.

돌밭에서 멀칭을 하고 힘들게 양배추를 심은 후, 처음 와 본다.

와, 생각보다 잘 자랐다. 그런데 문제는 풀들!

며칠 전에 '방황하는 영혼' 씨와 '오체 아빠'가 와서 인걸이를 반 정도 했다고는 하나 풀들이 엄청 자라고 있었다.

 

피 종류로 보이는 풀들이 거의 단일종으로 퍼져 있었다.

인걸이를 했지만 보습날에도 흙이 잘 뒤엎어지지 않아서 풀이 많은 곳은 낫질까지 해야 했다.

골 사이의 풀에, 그것도 돌이 많은 곳에 낫질을 하는 일이라서 '오체 아빠'가 해야 했다.

다들 낫질에 도전했지만 영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최복토' 양은 낫질에 익숙해지고 싶다면서 자꾸만 낫질을 해 본다.

돌까지 마구 쳐서 낫날이 엉망이 되었다. 자동 아웃 당했다. -_-;;

'최복토' 양에게 허리길이가 딱 3센치 더 길어서 늘 뭔가 아쉽다고 농담을 하곤 했는데

긴 허리 덕분에 연장을 쓰는 일에는 영 폼이 안 나기는 한다. ^^

멀리서 보면 허리 굽은 할머니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 제법 근육고 많아지고 어깨도 넓어서 낫질을 하는 모습이 청년처럼 보인다. ^^

 

나도 어릴 때 낫을 잡아 보고 거의 처음 낫질을 해 봤다. 생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다들 역시 뼈대 있는 농부의 피를 물려 받았다고 재미있어 하며 웃는다.

괭이든, 호미든, 낫이든 내가 잡으면 이상하게 폼이 난다는 것이다. -_-;;

아, 이를 어쩌랴. 나는 지금까지 내 몸이 정신 노동에 익숙한 줄 알고 살았건만!

연약한 작가의 꿈은 이제 끝인가? 이제 근육질의 글쟁이가 되는 것인가? ㅎㅎ

 

논둑, 밭둑에서 낫질을 하시던 아버지 모습이 떠올랐다.

굽은 허리로 참 낫질도 많이 하셨다.

나는 낫질을 하면서 내내 아버지를 떠올렸다.

하염없이 이렇게 낫질을 하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던 것일까?

낫질하는 내 행동이 아주 경건하게 생각되기까지 했다.

삼가 공경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낫질을 하며 나는 아주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밭이 있는 해발 600여 미터의 골짜기는 계곡과 어우려져 그 경치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다.

계곡, 폭포, 산의 절경까지 밭에서 보이는 경치가 정말 볼만하다.

마침 주말이라서 관광객 차들이 좀 지나간다.

나중에는 '밍밍 엄마'가 뒤에서 밀며 여성 4인조로 인걸이를 하기까지 했으니

지나가는 사람들은 뭐 하는 일인가 하고 신기해했을 것이다.

이 밭의 원래 땅 주인들(몇 명이 공동 구입한 듯)이 주말이라서 쉬러 온 날이었다.

이 밭은 유기농을 전제로 임대한 밭이다.

우리에게 염소 구이, 홍초주, 수박 등 새참을 정성껏 챙겨 주셨다.

젊은 여성들의 귀농 열의에 감동을 하신 듯 블로그에 올리겠다고 인걸이 사진도 막 찍으신다.

저녁 때는 '밍밍 언니'와 최복토' 양의 친구분이 서울에서 통닭을 사서 놀러 왔다.

아마도 산골이라 통닭 구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나 보다. ^^

주문하면 5킬로를 차로 달려서 비교적 금방 밭으로, 집으로 배달을 해주는데 말이다.

아무튼 염소 고기에 통닭까지 밭에서 먹었으니 일보다는 먹다가 오후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