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준비 시절/예비 농부의 농사 배우기(2011년)

비 그친 사이 양배추 수확하기

최정 / 모모 2011. 8. 8. 11:30

2011년 7월 15일 금요일. 비가 오락가락하더니 저녁부터 본격적으로 비가 옴

 

 

날씨가 왜 이러나 싶다.

작물들이 한창 자랄 6월에는 가물어서 애를 먹이더니

6월 22일부터 시작된 장마가 짧게 끝나는가 싶더니 중간에 며칠만 맑고 비가 계속 이어졌다.

이미 작물에게 필요한 충분한 비가 내렸다.

 

오늘은 해발 200여 미터에 심은 양배추를 수확하는 날이다.

4월에 정식을 한 밭이라서 정상적이라면 6월말이나 7월초 수확 예정이었다.

그러나 가뭄과 비로 양배추의 결구가 늦어진 탓에 이제야 수확을 하게 된 것이다.

비가 안 오는 틈을 이용해 조금 수확을 하기는 했으나

앞으로 또 비가 예보되어 있어서 오늘은 양배추 수확을 마쳐야 하는 날이다.

결구가 되고도 비가 와서 수확을 못 한 탓에 이미 양배추 일부가 밭에서 썪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랫집 아저씨네에서 3명, 우리 농장 식구 3명에다가 이 마을에서 일꾼 2명을 얻었고

오후 늦게 근처에 사시는 긴머리 아저씨가 오셔서 도와주셨다.

 

이 양배추밭은 우리가 살고 있는 농장에서 차로 한 시간은 달려와야 하는 곳이다.

우리는 이곳에 일을 하러 올 때마다 기름값이 더 들겠다고 투덜거리곤 했다.

장거리 농사인 셈이다.

 

 

며칠 동안 내린 비로 불어난 개울물

 

계속되는 비로 썪어가는 양배추

 

양배추를 수확하여 박스에 담아 놓은 모습

 

한 박스에 평균 12개 정도의 양배추가 담겨져 있다.

 

저장고에 보관하기 위해 속비닐로 싸서 옮겼다.

이 양배추에 비가 들어간 탓에 지금 저장고에서 일부 양배추들이 썪어가고 있다.

 

 

한 사람이 양배추 밑둥을 잘라 주면 다른 한 사람이 겉잎을 떼어내고 플라스틱 박스에 담았다.

담는 것을 한 사람 더 두어 3인 1조로 작업하면 속도가 제법 붙는다.

양배추는 비교적 단단해서 상하거나 부서지는 것을 덜 걱정하고 수확할 수가 있어서 편하기는 했다.

문제는 P박스(플라스틱 박스)의 무게였다.

양배추가 가득 담긴 P박스를 트럭이 있는 길가로 나르는 일이 문제였다.

저번에 수확한 양상추의 경우에는 여자도 한 박스 정도는 들어낼 수가 있었지만

이 양배추는 한 박스의 무게가 적어도 15-20킬로는 된다.

남자 일꾼들이 나르는 일을 했는데 날이 더워서 쉽게 지쳤다.

트럭에 가득 양배추 박스가 쌓여지면 이것을 저장고로 옮겨 쌓아놓아야 한다.

이렇게 수백 박스를 채우고 나르는 일이 종일 계속된다.

 

심는 것도 하루에 확 심어야 하는 일이라 일이 빡빡하게 진행되지만 수확 역시 마찬가지이다.

작물의 상태를 보고 가장 적절한 수확 시기를 잡아야 하고

무엇보다 재빨리 수확하여 저장고로 옮겨 알맞은 보관을 해야 한다.

양배추는 비교적 덜 까다롭게 잘 크는 작물이기는 하지만 수확이 만만치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이 밭에 있는 양배추는 비교적 잘 자랐다. 벌레와 풀을 잘 다스렸다. 맛도 좋다.

중간에 비가 오락가락하여 불안했으나 저녁 6시부터 비가 본격적으로 오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면 수확을 끝낼 수 있는 양이라서 우비를 입고 다들 엄청난 속도로 밀어붙였다.

완전 지친 몸이었으나 오늘 끝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모두들 열심히 해 주었다.

오늘 못하면 나머지는 비를 맞고 밭에서 그냥 썪어가리라는 것을 다들 알기 때문이다.

비를 맞고 한 시간을 더 하니 얼추 900여 평의 양배추 수확을 끝냈다.

아직 덜 큰 것들은 일부 남겨두었다. 작은 것은 며칠 뒤에 와서 추가 수확을 하게 될 것이다.

비가 쏟아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동안

몸은 지쳤지만 수확을 끝냈다는 개운함이 있었다.

 

올해는 이 양배추의 가격이 문제이다.

작년에 기후에 따른 채소값 폭등으로 양배추 가격이 엄청났다고 한다.

그 탓인지 올해는 봄부터 엄청난 양의 양배추가 쏟아져 나와 가격이 거의 폭락 수준이었다.

마트에서는 한 통에 1천원 정도에 팔리고 있었다.

그래서 '오체 아빠'는 이번에 수확한 양배추를 두어달 저장고에 보관할 계획이라고 한다.

아직 주변에 출하를 못하고 적체된 양배추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농사는 참으로 끝까지 알 수가 없다.

양배추를 수확할 때만 해도 이 많은 것들을 다 어쩌나, 다 출하를 할 수는 있을까 하고

다소 씁쓸한 마음이었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은(8월초) 정말 지겹도록 계속되는 비와 물폭탄 같은 비가 전국을 휩쓸어서

다시 양배추의 가격이 많이 올라 있다.

유기농은 미리 약정된 가격이 있어서 일반농 가격처럼 출하를 하지는 않으나 적체는 면할 수 있을 것 같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다른 지역의 피해가 또다른 지역에서는 이익으로 환원되는 현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농사는 다 하늘의 뜻이라 했으니, 내가 무얼 알겠는가.

내가 농부가 된다면

일희일비하지 않고 하늘과 땅이 준 만큼 먹고 살아가야 겠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7월 18일 월요일 맑음. 양배추 추가 수확                                             옆의 야콘은 잘 자라고 있다.

 

 

며칠 후 덜 자라 둔 양배추를 추가 수확하고

좀 터졌거나 그래도 어린 것들은 우리가 먹으려고 따로 수확을 했다.

돌아오는 길에 '오체 아빠'는

밭주인 할아버니네, 모종 하우스를 빌려준 집, 와서 일을 해준 집 등등

여기저기에 수확한 양배추를 한 박스씩 집 앞에 놓아두고 간다.

밭에 더 남은 것들은 동네 사람 아무나 가져가도 '오체 아빠'는 그냥 둔다.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밭이라 숱하게 오가는 기름값 등의 투자 경비를 빼면

이 밭에서 남는 게 뭐가 있을까 싶었다.

특히 올해처럼 비로 많이 썪은 상황이라면 말이다.

그래서 내가 '오체 아빠'에게

이 밭에서 남는 것은 동네 '인심'이라고 말해 주었다.

농사 고수의 속을 어찌 알까마는 '인심'만을 남기는 밭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