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준비 시절/예비 농부의 농사 배우기(2011년)

고라니의 습격! 브로컬리 다시 심고 또 심고 또...

최정 / 모모 2011. 8. 8. 13:30

2011년 7월 19일 수요일. 종일 가랑비에 바람이 심했음. 먼 곳의 태풍 영향

 

 

양배추 수확에 정신이 없던 사이에 이 놈의 고라니들이 내려와

브로컬리를 아주 잔뜩 먹어 치웠다.

저번에 집중호우 속에서 새로 심은 브로컬리가 1500여 평인데

그 중에 거의 600평 이상은 싹뚝 잘라 먹은 것이다.

'오체 아빠'는 암담해졌다.

이대로라면 올해 예상한 수확 물량을 맞출 수가 없는 것이다.

 

시작은 600여 평이었으나 지난 번 건너 편 밭에도 꽤 먹어 보식을 했으나 다시 먹고

이날 이후에도 고라니는 계속 내려와 뜯어 먹었으니

우리가 고라니를 먹여 살리고 있는 수준이었다.

그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지 알 수 조차도 없다.

우리 농장의 주작물인 브로컬리 농사가 초반부터 큰 재앙을 만난 셈이다.

더구나 이때만 해도 그나마 키워둔 모종이 있어 보식을 해서 만회를 해 볼 생각이었다.

밤마다 고라니를 막기 위한 파수를 서도 초저녁이나 잠깐의 틈을 이용해서

계속 야금야금 뜯어 먹고 가니 이젠 더이상 보식을 할 모종도 없다.

그리고 원래 안 해도 될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 보식하는 일도 점점 지치게 된다.

 

올봄에 양상추와 브로컬리를 뜯어 먹을 때만 해도

이상하다, 봄부터 그러지는 않았는데 하면서 밭둘레에 망을 치는 것으로 방비가 될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천적이 없는 고라니가 얼마나 개체수를 늘렸는지

점점 더 극심하게 밭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불빛과 사람을 멀리하는, 예쁘게 생겼다는 초식 동물 고라니를 도대체 본 적도 없는데

밭에 있는 브로컬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망을 쳐도 뛰어 넘어 온다.

사람 냄새로 고라니를 막는다고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얻어서

(이것도 너도나도 얻으려고 해서 구하기 힘들다. 2달 이내 것을 얻어야 그나마 냄새가...) 걸어 두고

작업등을 연결해 불빛도 밝혀 두고...

이젠 아예 밤마다 '밍밍 엄마'가 파수를 선다.

벌써 밤을 새고 아침에 자고 일어나 오후에 일을 하기 시작한 지가 20일이 넘어간다.

'밍밍 엄마'의 몸이 엉망이 되어 가고 있다.

밤 9시 30분 경에 밭에 나가 아침에 들어오는데

잠깐 졸 때 오거나 아니면 초저녁에 먹고 가버리니 갈수록 약이 오를 수 밖에 없다.

어떤 집에서는 시간에 맞추어 폭죽을 터트리기도 하고

밭 주변에 덧을 놓기도 하고

엄청난 비용을 감수하고 고압 전류선을 밭 둘레에 쳐 놓은 집도 있다.

우리밭 근처에도 개가 3마리가 지키고 있지만 소용이 없다.

 

 

7월 17일 토요일. 저녁부터 브로컬리 보식 시작

 

7월 19일 화요일. 종일 브로컬리 보식

 

고라니가 뜯어 먹은 브로컬리 모습

 

7월 20일 수요일. 다시 뜯어 먹어서 추가 보식

 

7월 20일 수요일. 보식한 브로컬리 어린 모종이 비닐에 닿아 말라 죽을까봐 일부 복토하기

 

7월 25일 월요일. 또 뜯어 먹어 '밍밍 엄마'와 '텃밭 언니'가 브로컬리 보식을 하고 있다.

 

이젠 모종이 없어 보식도 더이상 못한다.

 

고라니가 사람 냄새를 무서워한다고 미용실에서 얻은 머리카락을 밭가에 매달아 둔 모습. 옆에는 밍밍이

 

 

            고라니가 좋아하는 종류를 들면

1위 브로컬리, 2위 케일, 3위 양상추라고 한다. '오체 아빠'가 얘기해 준 것이다.

우리 농장에서는 양상추와 브로컬리를 고라니에게 바친 셈이다.

 

브로컬리를 수확한 밭에 다시 브로컬리를 후작으로 심으려고 키운 모종을 보식으로 몽땅 써야 했다.

또 심고 먹으면 또 심고..., 이러다 보면 슬슬 약이 오르기 시작한다.

그냥 약이 오르는 정도가 아니라 일 년 농사를 망치고 있으니 분노가 치밀게 된다.

그 밭에 들어간 노동력과 경비를 생각해 보라.

 

단연코 우리의 화제는 고라니였다.

무식하기는 하지만 직접 밭에 가서 망을 보는 일이 최선일 수 밖에 없었다.

'밍밍 엄마'는 급기야 꿈에서 고라니를 잡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간 여기저기서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이곳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이라면 농작물을 망치는 동물에 대한 분노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연히 망에 걸린 고라니를 분노의 폭풍 돌맹이질로 내려쳤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고

고라니 고기는 생각보다 맛이 없다는 둥

고라니 생피에 특정 음료수를 타서 마시면 맛있다는 둥

고라니는 회로 먹어야 그나마 먹을만 하다는 둥

동물보호론자들이 들으면 그야말로 참담하게 들릴 이야기들을 많이 듣었다.

작물을 직접 심고 키우는 사람이라면 고라니를 잡고 싶어진다.

고라니를 몰아내고 싶어진다.

적당히 먹고 가는 것이면 그나마 자연의 질서라고 위안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올해는 심하다. 동물 침입으로 파산을 하게 될 처지가 된 농가도 있을 것이다.

 

멧돼지가 아니라서 그나마 위안을 삼기도 했다.

고구마, 옥수수 등을 좋아하는 멧돼지가 나타나면 밭 자체를 엉망으로 쑤셔서 망치기 때문이다.

그래도 고라니는 비닐에 구멍을 뻥뻥 뚫어 나중에 풀이 올라오게는 하지만

얄밉게 싹뚝 잘라먹고는 얼른 가버리기 때문이다.

 

인천에 와서 뉴스를 보니

올해는 멧돼지, 고라니, 까치 등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가 심해서

내년부터는 일정 정도 보상을 하는 법안을 마련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과연 어떻게, 얼마나 보상을 해 줄까?

생태계 질서를 파괴한 인간의 과오가 이렇게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환경이 파괴되어 기후가 변덕스러워지고

야생 동물의 생태계 질서 파괴로 농작물 피해가 커지고...

아, 농사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유기농으로 지구의 땅과 공기를 되살리고

화학물질과 농약, 항생제 잔류물이 축적되어 온갖 암이 늘어나는 인간의 몸도 살려야 하는데

갈 길이 참 멀다.

먹을거리 생산을 정치적인 자본의 논리에만 맡긴 죄이다.

이렇게 널리 해석하면 마음만 심란해진다.

그냥 고요하게 땅에 순응하며 살아야지! 하며 마음을 다스려 본다.

우리 모두 제 일생을 마치면 다시 흙으로 돌아갈 몸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