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준비 시절/예비 농부의 농사 배우기(2011년)

인해 전술의 위력

최정 / 모모 2011. 9. 1. 21:00

2011년 8월 12일 금요일. 흐리고 더움. 빗방울 조금

 

 

비가 계속되는 가운데 풀들은 야속하게도 부쩍 자랐다.

감당하기 힘들 만큼 풀들이 밭들을 점령해가고 있다.

 

다행히 우리를 도와줄 일꾼들이 왔다.

파주에 있는 대안학교 고등학생들 일곱 명이 선생님 두 분과 3박 4일로 농촌체험활동을 왔고

여기서 2시간 거리에 있는 귀농학교에서 여성 한 분, 남성 두 분이 도와 주러 오셨다.

역시 풀뽑기는 인해전술이 최고였다.

1,500여 평의 브로콜리밭에 가득했던 풀들을 점심 때까지 다 제압했다.

우리끼리 했으면 며칠 동안을 해야 가능했을 것이다.

 

                 

                          7월 7일 전후로 심은 브로컬리                                                            풀들이 더 많다.

 

                 

             풀에 묻혀있던 브로컬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풀을 다 뽑고 난 후 개운해진 브로컬리밭

 

 

            뜻밖의 일꾼들이 와서 밀린 제초 작업을 도와준 것도 고마웠지만

많은 이야기들을 서로 나눌 수가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

귀농학교에서 오신 분들은 농사일을 배우며 귀농을 준비하시는 분들이었다.

대안 학교 학생들은 이미 농촌활동 경험이 있어서 일도 잘 했고

개인의 개성과 자유가 느껴져 일반 고등학교 학생들과는 달리 행복해 보였다.

 

풀을 제거한 후 브로컬리들은 부쩍 자랐다.

내 마음도 이렇게 부쩍 자라나는 기분이다.

 

 

 

2011년 8월 14일 일요일. 맑다가 흐림. 잠깐 지나가는 비

 

 

오늘은 해발 500여 미터에 있는 양배추밭 제초 작업을 하는 날이다.

일꾼들이 와서 풀을 많이 제거해준 상태였지만 일부 남은 것이 있었다.

이 밭은 온통 피밭이었다.

심지어 사람 키보다 더 크게 피들이 자라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벼와 흡사한데 키가 크면 어찌나 뿌리가 단단한지

도저히 손으로 뽑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낫질을 하는 수밖에 없다. 벼를 베듯 낫으로 피를 베어 골에 덮어 둔다.

 

 

                  

          7월 3일에 심은 양배추밭. 피들이 사람 키만큼 자랐다.                       제초 작업이 끝난 양배추밭. 추석 후 수확 예정이다.

 

 

날은 조금 흐린데 은근히 더운 날이었다.

어제가 말복이었으니 이제야 복날 값을 하려나 보다.

8월초에도 쏟아진 비로 이번 주에 와서야 본격적인 휴가철이 되었나 보다.

이 밭이 있는 골짜기는 계곡이 깊고 골짜기 풍경이 일품이라서 유명한 관광지라더니

우리가 일하고 있는 길옆으로 휴가를 온 사람들이 꽤 보였다.

가까이에서 계곡물 흐르는 소리는 들리고 날은 덥고 해서

우리도 내친 김에 점심을 계곡에 가서 먹기로 했다.

 

밭을 벗어나 잠깐 이동했을 뿐인데 시원한 계곡물이 흘렀다.

점심 도시락은 그야말로 꿀맛일 수밖에...

눈앞에 보이는 이런 계곡물은 별거 아니라는듯 더 위쪽에 있는 계곡을 둘러보자고

'오체 아빠'가 제안했다.

트럭을 타고 계곡물이 흘러나오는 길을 따라 올라갔다.

이런! 비포장이라서 덜컹거리는 트럭 위에서 계곡 풍경을 카메라에 담지 못한 것이 끝내 아쉬웠다.

강원도의 산과 물이 깊다더니 아, 이건 눈으로 봐야 안다.

와, 와, 와! 연신 감탄을 하며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은 계곡길을 따라 올라갔다.

물이 어찌나 맑은지 투명함 그 자체였다.

이런 곳들은 용케도 가만히 두지를 않는다.

계곡 옆으로 펜션도 심심찮게 있었고 휴가객도 꽤 많이 와 있었다.

이렇게 맑고 깊은 계곡이 있다니!

다음에 다시 와서 한적하게 걸어 보고 싶다.

 

우리는 다시 일을 해야 하니까 끝까지는 가지 못하고 돌아 나왔는데

한 시간여 트럭을 타고 계곡을 돌아보는 동안 눈이 아주 맑아졌다.

마음까지 맑아지는 기분이다.

 

 

                

                    '밍밍 언니'가 준비해 준 도시락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점심 도시락을 먹었다.

 

                  

           지나가는 비를 피해 다리 밑으로 가서 쉬다.                                         비가 내리는 풍경 - 계곡과 골짜기

 

 

점심 도시락을 먹고 계곡물을 실컷 보고

다시 제초 작업을 좀 하려는데 이번에는 먹구름이 몰려 온다.

보아 하니 지나가는 비구름 같아서 우리는 근처에 있는 다리밑으로 이동했다.

날은 더운데 비는 무척 차다.

새참으로 가져온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비를 피했다.

오늘은 어찌 돌아가는 상황이 일하러 온 게 아니라 소풍을 온 것 같다.

그럭저럭 양배추밭 풀 제거는 끝냈으니 그럼 된 것 아닌가.

 

아, 맞다. 브로컬리!

아랫쪽 밭의 브로컬리가 풀 작업을 하는 동안 수확 시기를 넘기고 있었던 것.

꽃이 피어버리면 상품 가치가 없다.

부랴부랴 돌아와 랜턴을 켜고 아랫쪽 밭에 심은 브로컬리 첫 수확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