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준비 시절/예비 농부의 농사 배우기(2011년)

가을 바다에서 '관동별곡'을 흥얼거리다

최정 / 모모 2011. 9. 14. 22:30

 

2011년 9월 6일 화요일. 맑음

 

 

6월초 동해로 봄 소풍을 간 이후로 거의 3달만에 동해로 가을 소풍을 가게 되었다.

트럭 한 대로는 다 같이 이동을 할 수 없기에 인제에 사시는 '야인 아저씨'를 초대해서 같이 갔다.

구룡령을 넘어 가기 전에 해발 500여 미터에 있는 양배추밭에 들러 양배추의 상태를 둘러 봤다.

추석이 넘으면 수확할 밭이다. 겉잎에 벌레가 갉은 흔적이 많았지만 알이 실하게 차고 있었다.

다행이다, 생각하며 해발 100미터의 구룡령을 넘어갔다.

참으로 꼬불꼬불한 산길을 넘어서면 곧바로 양양에 닿는다. 

    

                

                                     양배추밭                                                        구룡령에서 잠시 내렸다. 구름 그림자가 선명하다.

 

                

                                         초가을 낙산 해변. 파도가 높은 날이었다. 파란 하늘과 바다가 장관이다.

 

                

                            최복토 양과 텃밭 언니                                                     밍밍 엄마, 밍밍 언니, 야인 아저씨

 

 

낙산 해변에서 바다를 보기로 했다.

바다는 볼 때마다 신비하다. 저 끝은 어디에 닿아 있을까.

얼마나 깊을까. 그냥 푸르다 못해 검푸른 걸까.

 

파도가 제법 높은 날이라서 우리는 신발을 벗어 던지고

파도 피하기 놀이를 했다. 한참을 그렇게 뛰다 보니 허기가 졌다.

맨발에 닿는 모래 감촉이 부드러웠다.

실컷 바다를 보고 점심을 먹고 우리는 더 북쪽을 향해 달렸다.

대부분 '야인 아저씨' 차에 탔는데 끊임없이 7080 노래를 들어야 했다.

그래도 아는 곡이 꽤 나와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기분을 냈다.

 

 

                 

                          천학정에 들려 쉬다.                                                        바다를 내려다 보는 후배 뒷모습

 

                

                      천학정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천학정과 바다

 

바다 경치를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옛 정자가 있기 마련이다.

정자들을 보면 참으로 절묘하게 딱 좋은 곳에 위치해 있곤 한다.

천학정에 올라 잠시 쉬어 가며 바다 풍경에 취해 보았다.

안내판에 보니 관동별곡 8백리길, 제 9코스 시작 지점으로 천학정을 소개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달달 암기해야 했던 관동별곡을 새삼 읽어보고 싶어진다.

 

<관동별곡> 중에서 천학정 전에 지나 왔던 청간정과 낙산 해변이 언급되는 부분을 옮겨 본다.

淸쳥澗간亭뎡 萬만景경臺대 몃 고되 안돗던고.(청간정, 만경대를 비롯하여 몇 군데서 앉아 놀았던가?)

梨니花화셔 디고 졉동새 슬피 울 제, (배꽃은 벌써 지고 소쩍새 슬피 울 때)

洛낙山산 東동畔반으로 義의相샹臺예 올라 안자, (낙산사 동쪽 언덕으로 의상대에 올라 앉아,)

 

日일出출을 보리라 밤듕만 니러니, (해돋이를 보려고 한밤중쯤 일어 나니,)

祥샹雲운이 집픠 동, (상서로운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듯)

六뉵龍뇽이 바퇴 동, (여러 마리 용이 떠받치는 듯)

바다 날 제 萬만國국이 일위더니, (바다에서 솟아오를 때에는 온 세상이 흔들리는 듯 하더니)

天텬中듕의 티니 毫호髮발을 혜리로다. (하늘에 치솟아 뜨니 가는 터럭도 헤아릴 만큼 밝도다.)

                                                                                                    -  정철의 <관동별곡> 중에서 -

 

                

           천학정 근처에서 단체 사진을 찍으려 했으나 제각각. 도대체 국적을 알 수 없는 모습들이라 사람들이 우리를 힐끔거린다.

 

                

                           백도의 빨간 등대                                                                     백도의 아름다운 포구

 

가리비를 먹겠다는 일념으로 백도까지 달려 갔다.

즉석에서 싼 값에 사서 구워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아, 그러나 어찌 하랴. 태풍 간접 영향권에 들었던 탓으로 가리비가 없었다.

우리는 쉽게 백도를 떠나지 못하고 한참을 서성거리며 잔잔한 포구 풍경에 빠졌다가 나왔다.

 

                

              배에 올라 한껏 분위기를 내는 최복토 양                                               동해가 내려다 보이는 화암사

 

 

                

                           화암사 수바위                                                                          수바위 옆에 뜬 낮달

 

가리비를 구워 먹을 생각에 들떠 있던 마음이 아쉬워 돌아오는 길에 화암사에 들렸다.

절 입구에 들어서고도 몰랐는데 수바위를 보는 순간

아, 지난 가을에 왔던 그곳이구나, 하고 금방 알아 봤다.

가을 설악산을 등반한 후에 도사리 샘의 안내로 온 곳이었다.

순간 그때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수바위 옆에 뜬 낮달!

아, 그 느낌을 표현할 길이 아직 내겐 없다.

 

 

                

                 속초 수산 시장에 가다. 가리비 사러.                                       돌아 와서 가리비를 실컷 삶아 먹었다.

 

 

저녁을 어떻게 할까 궁리를 하다가

결국은 가리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잔뜩 사왔다.

가리비, 돌조개, 참조개 등등

1시간 30분을 달려 돌아오자 마자 가리비부터 삶기 시작한다.

'밍밍 엄마'와 '텃밭 언니'가 매우매우 만족한 저녁 식사였다.

구이도 좋지만 가리비는 삶아도 연하게 씹혔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노는 일이 하루 일하는 것보다 고되었다.

화암사에서 다리를 삐끗한 최복토 양을 보면 안다.

누적된 피로가 몰려 왔나 보다.

담경락의 '구허' 자리가 부어 올랐다.

몇 개의 침으로 응급 조치를 하고 돌아와 다시 침을 본격적으로 찔렀다.

병원가면 깁스를 하고 일주일 이상 꼼짝 말라고 할텐데

아쉽게도 최복토 양의 다리는 빠른 시일 내에 회복되었다.

더 쉴 수 있는 기회인데, 이럴 때는 침이 야속할 수도 있겠다.

 

빡빡하게 돌아다닌 우리의 가을 소풍이 이렇게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