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준비 시절/예비 농부의 농사 배우기(2011년)

얼굴 보다 큰 브로컬리를 따다!

최정 / 모모 2011. 9. 29. 15:40

2011년 9월 15일 금요일. 맑고 더움

 

 

추석 휴가를 마치고 달려간 곳은 시금치밭이었다.

이미 3일째 시금치밭 김매기를 한 상태라서 내가 갔을 때는 거의 다 끝나 있었다.

시금치 파종을 할 때만 해도(8월 26, 27일)

과연 싹이 잘 올라 올까 하고 걱정을 했는데 제법 줄을 맞추어 잘 자라고 있었다.

이렇게 땅에 뿌리를 박고 자라는 것들을 보면 아직도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요즘 비가 딱 그치고 늦더위가 오면서 밭에는 물기가 부족했다.

아니나 다를까, 따로 물 뿌리는 관리를 하고 있었다.

비가 많이 와도 너무 안 와도 농부는 할 일이 많다.

농사는 기후를 잘 읽고 때를 맞추어야 하는 일이며,

또한 기후에 순응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를 탓할 수 있으랴.

 

가을 시금치라서 풀이 덜 자라는 계절이라 김매기는 한결 수월한 일이라지만

이것을 어찌 다 수확하랴.

여름 시금치를 조금 수확해 본 경험이 있는 우리들은 벌써 수확철 걱정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많은 양의 시금치를 수확하고 싶다.

이 유기농 시금치가 얼마나 맛있는지 우리는 알고 있으니까!

 

호미를 들고 시금치밭 김매기를 하는 '최복토' 양과 '밍밍 언니'

 

시금치 옆에 각종 풀싹들이 빼곡하게 올라온다. 이것을 일일이 호미로 긁어 주고 흙을 뒤엎어 준다.

시금치는 멀칭을 할 수 없으니 풀과의 전쟁이다. 유기농법은 풀과 함께 공존하는 길이기도 하다.

 

김매기를 마친 후, 깔끔해진 시금치밭

 

1000여 평의 시금치밭 모습

 

9월 24일 토요일. 제법 자란 시금치 모습

 

 

 

요즘은 드디어 매일 브로컬리를 수확하는 철이다.

1500여 평의 브로컬리들은 7월초 강력한 집중호우 속에서 비를 맞으며 심은 것들이다.

일부는 썩어서 죽기도 하고 그보다 더 많은 양을 고라니가 내려와 싹뚝 잘라 먹었다.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길고 넓은 이파리 속에 한 송이씩 꽃을 피우고 있다.

 

수확하는 양에 관계없이 브로컬리는 매일 수확할 수밖에 없다.

일부러 간격을 두고 심기도 했지만 꽃이 자라는 속도가 제각각이어서

매일 출하 가능한 크기를 살펴보며 수확을 해야 한다.

수확 시기를 놓치면 아예 브로컬리의 꽃이 활짝 피어 버려서 출하를 할 수가 없거나

꽃이 너무 커버리기도 한다.

소비자의 손에 가는 브로컬리의 크기는 250그램 이상.

그보다 너무 커도 안 되니 크기에 맞추어 한 송이, 한 송이 살펴 보며 대를 자른다.

그리고 큰 이파리를 따 내고 상자에 조심스럽게 담는다.

브로컬리는 꽃이다. 쉽게 흠집이 나기도 하고 망가진다.

또한 재빨리 저장고로 옮겨 차갑게 해 주어야 한다.

그냥 상온에 두면 그 사이에도 브로컬리꽃이 피어 버릴 수가 있단다.

 

영양물질 덩어리라는 브로컬리 한 송이가 소비자의 손에 가기까지

참으로 까다로운 과정이 많다는 것을 여기서 일하면서 배웠다.

수확을 하러 밭을 다닐 때에도 넓고 긴 브로컬리 이파리를 살살 건드리도록

조심해야 한다. 자꾸 건드려서 스트레스를 주면 꽃 모양이 예쁘지 않게 자란다고 한다.

그래서 수확을 할 때 우리는 '오체 아빠'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 다닌다.

브로컬리를 담을 상자도 브로컬리를 마구 건드릴 수가 없으니

무거워도 손에 들고 따라 다녀야 한다.

매일 아침 하루가 이렇게 시작된다.

밤마다 산골짜기에는 안개가 짙게 낀다.

이슬에 흠뻑 젖은 밭에서 브로컬리를 수확하고 오면 옷이 흠뻑 젖는다.

브로컬리의 싱싱한 상태 유지를 위해서 아침에 수확을 한다.

안개가 걷히기 전, 이곳의 아침 기온은 낮기온 보다 평균 15도 아래이다.

 

여름에 심어 9월에 수확하는 브로컬리는 고랭지 지역에서만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니 발주량은 많은데 우리 농장에서는 그 양을 다 감당할 수가 없다.

더구나 올해 브로컬리 수확량은 평균 이하이다.

아, 더 팔고 싶어도 팔 수량이 없다.

특히 이 유기농 브로컬리 농사는 까다로워서 실패 확률도 높으니까 많이들 안 하나 보다.

 

꽃 모양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것은 주로 우리의 밥상에 올라 온다.

이 귀한 것을, 싱싱한 고랭지 유기농 채소를 밥상에서 지겹게 보게 되니 복에 겨운 일이다.

 

 

잘 자라준 브로컬리들

 

브로컬리 수확을 하는 밍밍 엄마, 최복토 양, 오체 아빠

 

수확 적기인 브로컬리를 선별하는 안목이 중요하다.

 

우와, 보통의 브로컬리 10개쯤은 합쳐 놓은 크기의 브로컬리를 땄다!

기념으로 내가 사진을 찍었다. '오체 아빠'는 이것을 아랫집 아저씨께 드렸다.

그냥 두면 이렇게 커지는 것도 간혹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