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詩여 침을 뱉어라'
"... 사실은 나는 20여년의 시작생활을 경험하고 나서도 아직도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 되지만,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다음시를 못 쓰게 된다. 다음시를 쓰기 위해서는 여직까지의 시에 대한 사변思辨을 모조리 파산을 시켜야 한다. 혹은 파산을 시켰다고 생각해야 한다. 말을 바꾸어 말하면,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 <김수영 전집-산문>(민음사, 1996 판본) 중에서
이 책은 96년 12월 10일에 '썩을' 선배님이 사 주신 거네요. ㅎㅎ, 앞에 서명이 되어 있어서요.
제가 온갖 책을 다 처분해도 시집과 시인 전집류는 보관하는지라...
새삼, 김수영 전집을 꺼내어 뒤적인 것은
詩쓰기란 '<온몸>으로 밀고나가는 것이다' 라는 구절 때문입니다.
이 말은 아직 유효한가요?
<온몸>으로 밀고 나간답시고 방탕하던 청춘 시절이 떠오릅니다.
이 시대에 아직 시를 쓴다는 것은 곰팡이 냄새가 나는 일이 된 것일까요?
무섭도록 빠른 속도로 문명이 폭풍 질주를 하고 있고 우리들 삶의 모습도 많이 변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무엇이 변한 걸까요?
밥을 먹어야 하고 추우면 옷을 입어야 하고 똥을 싸지 않으면 하루가 불편하고...
한 천 년쯤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도 그랬을 거예요.
이 단순한 사실을 깨닫는 데에 아주 먼 길을 돌아온 느낌입니다.
청춘 시절을 지나 이제 중년의 시작,
참 커보였던 반자본이라는 무거운 말보다는
반자연에서 자연으로 몸을 낮추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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